2014년 2월 23일 일요일 맑음.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 #97 Oasis ‘Don't Look Back in Anger’(1995년)
냉정한 나답지 않게 며칠 밤을 뜬눈으로 스포츠 경기에 몰입했다.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말이다. 김연아(사진)의 마지막 국제무대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았고 그 드라마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음악 질환자’인 탓에 선수들의 선곡에 눈길이 갔다. 클래식 곡이 많았지만 퀸, 롤링스톤스 같은 록을 고른 이도 적잖았다. 다만, 시끄러운 원곡 대신 현악이 가미된 다른 버전을 대개들 사용해서 좀 아쉬웠다. 섬세한 연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다. 그래선지 지난밤의 피겨 갈라 쇼에서 본 일본 선수 마치다 다쓰키의 ‘돈트 스톱 미 나우’는 퀸의 원곡을 전기기타에 미친 소년 로커처럼 소화해 속 시원했다. 결선 마지막 연기 뒤 펑펑 운 아사다 마오가 ‘삶이 여전히 살 만한 것이란 걸 알게 될 거야/미소를 지어봐’라 노래하는 캐나다 가수 이마의 ‘스마일/왓 어 원더풀 월드’를 택한 건 뭉클했다.
김연아는 존 레넌(1940∼1980)의 곡을 에이브릴 라빈이 재해석한 ‘이매진’을 들고 나왔다. 2007년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 난민 구호를 위해 국제앰네스티가 제작하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레넌의 곡을 재해석한 앨범에 담긴 곡이다. 레넌이 아닌 라빈의 목소리는 김연아의 성대에서 나오는 듯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 …지옥도 없고.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봐. …뭔가를 위해 죽이거나 죽을 일도 없지. 종교도 없고’라 노래하는 ‘이매진’은 따사로운 악곡과 달리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세의 신상필벌이 약속돼 있지 않다면 착한 사람들은 지금 당장 현실적인 형제애를 더 발휘할지도 모른다.
C장조인 레넌의 ‘이매진’은 ‘솔-시-라’와 ‘라-라#-시’의 멜로디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곡이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는 “우리가 최고”라는 안하무인의 태도로 유명했지만 비틀스에게만은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들은 히트 곡 ‘돈트 룩 백 인 앵거’를, 영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제목을 비튼 뒤 ‘이매진’의 피아노 전주를 그대로 가져와 완성했다.
드라마는 끝났다. 그러니까 올림픽이 폐막하면 김연아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매진’의 피아노 선율에 겹쳐 노래 속 샐리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 …적어도, 오늘은.”(‘돈트 룩 백 인 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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