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신임 추기경 서임 예식. 염수정 추기경(71)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칙서를 받는 순간 깜짝 놀랐다. 교황이 성호를 그어 축복한 뒤 염 추기경과 포옹하면서 큰 소리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교황의 발언에 염 추기경도 “한국인들도 교황님을 무척 사랑합니다”라고 응답했다.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교황이 공식 석상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교황의 방한도 곧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도 “교황은 한국을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한다”며 “(방한은) 최종 결정만 남았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는 바티칸과 한국 가톨릭교회가 공동으로 3월 초 교황의 8월 방한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드레아 염수정 아르치에피스코포(대주교) 디 서울.” 추기경 서임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처럼 새 추기경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교황은 순교자의 성혈과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 주케토(둥근 모자)와 비레타(사각 모자)를 추기경들에게 직접 씌워 주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서임식을 통해 김수환(1922∼2009), 정진석 추기경(83)에 이어 우리나라 세 번째 추기경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훈화를 통해 “교회는 추기경들의 수고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며 “폭력과 전쟁으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평화를 위한 투사가 되어 주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자”고 말했다.
이날 성베드로 성당은 세계 각국의 추기경들이 대부분 참석하면서 추기경의 복장 색깔인 진홍색 물결로 가득했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중계되는 서임식을 성베드로 광장에서 지켜보던 한국인 순례객 500여 명은 염 추기경의 이름이 호명되고, 주케토와 비레타를 받을 때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서임식에서는 염 추기경을 포함해 교황청 국무장관인 피에트로 파롤린 대주교 등 새 추기경 19명이 공식으로 임명됐다.
교황과 새로 임명된 추기경들은 23일 성베드로 성당에서 공동으로 서임 축하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미사 중 평신도들의 기도 순서에서는 로마한인성당 신자인 여고생 황재원 양이 한복을 입고 우리말로 기도해 눈길을 끌었다.
염 추기경은 축하 미사 뒤 로마 한인성당에서 열린 감사 미사 강론에서 “갈라져 있으면 서로 불신하고 배척하지만, 하나가 되면 서로 믿고 화해한다”며 “먼저 남북이 하나가 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화의 시대가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염 추기경은 21일 ‘가정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전하며 교황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염 추기경은 “6·25전쟁으로 생겨난 이산가족 대부분이 80세를 넘겼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으로 흩어져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족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위해 교황님께서 기도해 달라”고 청원했다.
24일 교황과 면담할 예정인 염 추기경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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