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두 번째 브랜드인 ‘미우미우’는 올해 봄여름 패션쇼에서 이른바 ‘다양한 여성’을 나타내려 했다. 복고적인 느낌을 담은 프린지(바탕천의 가장자리에 털실을 달아 만든 스타일) 장식부터 1970년대 느낌이 나는 동물무늬 의상, 구슬을 달아 만든 브래지어, 파스텔 색상의 울 코트 등 형형색색의 의상과 다양한 장식을 더한 옷을 한 패션쇼 안에 선보였다.
복잡할 정도로 장르가 다양해 보이는 것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패션쇼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대표됐던 샤넬의 ‘트위드’ 재킷은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됐다. 형형색색의 의상들이 잇달아 나온 샤넬의 패션쇼는 마치 갤러리에서 현대미술을 보는 듯했다. 레이스가 더해진 스커트 정장은 마치 구속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을 보는 듯했다.
유명 해외 브랜드들의 올해 봄여름 패션쇼의 특징은 복잡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 다양한 콘셉트가 패션쇼 안에 공존해 있다. 과거만 해도 디자이너는 핵심이 되는 내용 한두 가지를 패션쇼에 담았다. 의상은 다양하지만 주제는 일관성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패션쇼에서 이런저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의욕’일 수도 있다. 또 그만큼 유행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프랑스 디자이너 이자벨 마랑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랜드 ‘이자벨마랑’은 올해 봄여름 패션쇼에서 사랑스러움과 로커의 강인함을 동시에 선보였다. 꽃을 연상케 하는 시폰(얇게 짜 가볍고 유연한 견직물)과 강렬하고 세련된 느낌을 나타내는 가죽을 함께 사용해 의상을 만들었다. 얼핏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미스매치’ 느낌이 날 수도 있지만 오래 보다 보면 그것이 오히려 완벽하게 어울리는 미스매치가 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브랜드 ‘로샤스’도 올해 봄여름 패션쇼에서 미스매치를 강조했다. 웨딩드레스를 연상케 하는 흰색 드레스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거나 하늘거리는 살구색 상의에 금속 장식을 넣은 의상 등을 통해 ‘연약하면서도 우아한 여성’을 표현했다.
이자벨마랑과 로샤스가 여성성을 기본으로 강인함을 보였다면 ‘바네사브루노’와 ‘겐조’ 브랜드는 젊은 여성의 경쾌함을 중심으로 여성성을 건드렸다. 1990년대 10대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바네사브루노의 올해 봄여름 의상들은 주황, 파랑 등 생동감 넘치는 색을 통해 캐주얼하고 발랄한 여성을 나타내려 했다. 겐조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 해변의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의상들을 선보였다. 잔물결 무늬 의상부터 물고기를 주제로 한 티셔츠, 스킨스쿠버 소재의 의상 등 푸른 바다의 강렬함이 다양한 옷들에 나타났다.
캐주얼한 의상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브랜드 ‘생로랑’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은 1980년대 미국, 영국, 일본 등을 휩쓴 로큰롤 스타일을 여성 의류에 선보였다. 어깨를 강조한 회색 정장이나 표범 무늬가 들어간 스커트 등 화려하면서도 거친 느낌을 강조했다. 마치 무심한 듯 세련된 ‘젠틀 레이디’라고 할까.
반면 ‘발렌시아가’는 옷 속의 곡선들을 통해 여성의 우아함을 나타냈다. 어깨선을 강조한 상의나 A라인 미니스커트, 육중해 보이지만 몸에 달라붙는 듯한 드레스 등을 통해 의존적이지 않은 여성과 우아한 여성을 동시에 나타내려는 느낌이다. 마치 ‘오트쿠튀르’(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고객의 모든 니즈에 맞춰 제작한 맞춤복)와 ‘스포티’(스포츠에 어울리는 패션이나 활동성을 강조한 패션)의 조화랄까.
올해 봄 의상들에 한 가지 ‘대세’는 없다. 옷 속에 숨겨진 다양한 주제 때문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골라 입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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