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의 나라’의 저자 정창석 동덕여대 교수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지도자의 과거사 왜곡과 망언은 전후 일본 정치가 일왕(천황)과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일본인은 여간해선 ‘혼네(本音)’라 부르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 일본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 정치인의 과거사 관련 망언이나 역사 거꾸로 세우기 행태를 보고 있자면 장기 경제침체와 자연재해로 인한 일본 사회의 위기감이 혼네를 감출 여유마저 없애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3·1절을 앞두고 나온 ‘만들어진 신의 나라’(이학사)는 극우강경파 아베 신조 총리에 의해 ‘아베의 나라’로 전락 중인 일본 체제의 본질적 문제로 천황제를 정조준했다. 일본 천황제의 성립과 변천, 일본 근현대사와의 조응 양상을 파헤친 이 책의 저자 정창석 동덕여대 교수(일본어학)는 일본 문부성 장학생 출신으로 일본에서 10년이나 공부한 ‘지일파’다. 하지만 책에는 일본 정치는 ‘사이비 민주주의’이고 일본 근대지식인은 일왕(천황)이 원하는 답만 내놓는 ‘어리석은 모범생’이라는 매서운 비판이 가득하다.
“제가 일본에서 유학을 했을 때는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시절이었어요. 정치가 경제(정경), 관료(정관), 언론(정언)과 유착돼 비리사건과 스캔들이 끊이질 않았는데 늘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흐지부지되더군요. 이런 일본 사회의 병폐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니 그 끝에는 언제나 천황제가 자리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지요.”
정 교수는 일본의 천황제가 도쿠가와 막부에 불만세력이었던 하급 무사층의 권력 쟁취 과정에서 빈약한 정통성을 감추려고 필요에 의해 ‘발명’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훗날 피할 수 없는 질곡으로 되돌아왔다고 분석했다. “근대 일본의 천황제는 18세기 유럽의 절대주의에 가족주의, 제국주의까지 결합된 괴물입니다. 일왕의 말을 신이 내린 법칙, 거역 못할 가장의 말처럼 받아들이다 보니 ‘일왕이 하는 일은 뭐든지 옳다’는 식이 된 것이지요. 침략 전쟁 기간 벌어진 악행에 대한 자각도 없고 죄의식은 금세 의식의 표면에서 풍화돼 버렸습니다.”
그는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인의 망각증을 키우는 데는 일본의 전후 부흥과 경제성장이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우선 승전국인 미국이 A급 전범으로 재판 받은 인물이 복권돼 외무대신, 법무대신을 맡는 것을 용인할 정도로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데 관대했어요. 일본의 경제성장 앞에 세계 여러 나라 개도국 정치인들이 원조를 요청하며 존경을 표하는 마당에 일본인의 머리에는 ‘전쟁책임이고 반성이고 경제적으로 잘살면 그만이구나’ 하는 의식이 고착된 것이지요.”
일본의 미래에 희망은 있을까? 그는 이 또한 천황제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고 했다. “전쟁 책임을 묻는 일본 내 양심세력조차 천황제 폐지를 말하는 이는 없어요. 에도 막부시대 기독교 신자 색출 방법으로 예수나 성모마리아의 성화를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을 ‘후미에’라고 했는데, 이제 일본 사회가 일왕이라는 후미에를 밟고 넘어갈지 피해갈지 선택할 때가 됐습니다. 물론 전자만이 일본이 잘못된 역사에서 해방돼 ‘대동아 공영권’이 아닌 ‘아시아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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