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후반의 어느 날, 30대의 구스타프 말러가 60대인 요하네스 브람스를 찾았습니다. 브람스는 당대 독일어권 음악계 보수파의 거두였고, 말러는 교향악 분야의 혁신세력을 대표하는 야심만만한 젊은 작곡가였죠. 말러는 젊은 시절의 야심작인 칸타타 ‘탄원의 노래’가 브람스를 비롯한 보수적 심사위원진의 판정 때문에 ‘베토벤상’ 심사에서 떨어진 일도 있었지만, 이후 두 사람은 비교적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개울가를 산책하던 중 브람스는 큰 소리로 작곡계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은 이제 끝났네.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도대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 없단 말이야.” 그 순간 말러가 개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기 마지막 물결이 흘러오고 있군요!”
“…!” 세상에 마지막 물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브람스도 허허거리며 불평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일화를 떠올릴 때마다 브람스의 교향곡 2번과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생각하게 됩니다. 브람스 곡의 4악장은 중간부에 갑자기 느려지면서 잔잔하게 깔리는 현악 위에 ‘미-시-도-라’, 세 음 낮아졌다 한 음 올라갔다 다시 세 음 낮아지는 선율이 목관으로 나타납니다. 말러 교향곡 1번 첫 악장의 서주부에도 이와 너무나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찬미를 담은 점도 두 작품이 비슷합니다. 브람스의 곡은 황혼을, 말러는 새벽을 나타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우연치고는 묘한 유사성입니다. 혁신가 말러는 첫 번째 교향곡에서 ‘위대한 보수주의자’ 브람스에 대한 오마주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을까요, 또는 단순한 우연이었을 뿐일까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대니얼 하딩 지휘로 내한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합니다. 이틀 앞서 KBS교향악단은 같은 장소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합니다. 시간과 여유가 있는 분은 콘서트를 통해 두 작품의 닮은 부분을 마음속에 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저는 브람스와 말러가 세대를 교대하면서 나란히 활동했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잘츠카머구트 호수지대를 5월에 다녀옵니다. 함께 가실 분? to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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