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lingerie)’는 여성의 속옷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단순한 외래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공장소에서 란제리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란제리는 왠지 야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홈쇼핑에서 란제리를 판매하고 온라인에 란제리 전문 쇼핑몰이 생기는 등 란제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추세를 보인다. 또 겉옷 못지않게 속옷도 잘 입길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란제리에도 디자인과 색깔 등 ‘유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브래지어와 코르셋으로 대표되는 란제리는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자 한편으로는 여성을 구속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단순히 가슴을 가리면서 모아주는 역할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아름다움을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달 4일(현지 시간)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피어 59 스튜디오’에서는 국내 유통업체 GS샵 주최로 ‘2014 GS샵 란제리 컬렉션’이 열렸다. 올해 처음 열린 이 행사에서 GS샵은 ‘원더브라’ ‘플레이텍스’ ‘스팽스’ 등 세계적인 란제리 브랜드들의 신상품을 공개했다. 이 상품들을 통해 올해 봄여름 란제리 유행을 살펴보자.
올 들어 란제리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편안함’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노 와이어’ 형태의 브래지어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아침부터 밤까지 브래지어를 종일 착용한다. 보통 와이어가 들어 있는 브래지어는 가슴을 모아주고 볼륨을 잡아주지만 피부를 찌르거나 멍들게 하는 단점이 있다. 심할 경우 흉부를 압박해 소화 불량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플레이텍스’ 등 란제리 브랜드들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좀 더 편안하고 건강하게 입을 수 있는 노 와이어 제품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재익 GS샵 이너웨어팀 상품기획자(MD)는 “노 와이어 브래지어는 기존 제품에 비해 무게를 20% 이상 줄여 가볍고 편안해졌다”며 “나이 많은 여성들이 입는 것이라는 과거의 선입견을 깨고 최근에는 20, 30대 여성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 플레이텍스의 ‘18아워’를 들 수 있다. 이 제품의 이름에는 ‘매일 18시간 이상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와이어를 없앤 대신 옆구리 앞부터 가슴을 잡아주며 일반 브래지어보다 넓은 U자형 날개 구조로 만들어져 몸매를 보정해준다.
가슴을 중앙으로 모아주는 제품으로 인기를 얻은 ‘원더브라’도 ‘와이어 프리’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와이어 없는 브래지어는 편하지만 볼륨감을 살리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호주 출신의 세계 최정상 모델 미란다 커를 제품 홍보의 최전선에 세웠다. 특별한 기능으로 차별화
요즘 유행하는 패션 경향 중 하나는 ‘시스루’ 스타일이다. 시스루는 반투명한 소재를 써서 옷 안쪽이 살짝 비쳐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가벼운 시폰이나 실크 소재의 시스루 의상으로 몸매를 드러내는 옷들이 유행하면서, 그 안으로 보이는 란제리를 잘 갖춰 입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로 인해 란제리 브랜드들은 최근까지 가슴을 모아주고 튀어나온 살집을 눌러줘 날씬하게 보이도록 하는 체형 보정 기능 제품들을 내놓아 왔다.
올해는 보정은 기본이고 여기에 특별한 추가 기능을 얹은 기능성 제품이 잇달아 나왔다. 주요 업체들은 일반 면보다 가벼운 특수 소재를 사용하거나 반짝반짝 광택이 있는 소재, 땀 흡수력이 있거나 통풍이 잘되는 소재 등을 써서 제품을 만들고 있다. 귀네스 팰트로나 오프라 윈프리 등 해외 스타들이 즐겨 입어 유명해진 ‘스팽스’는 지난해부터 상체를 잡아주면서 입기 편한 ‘캐미솔’(러닝셔츠 같은 민소매 속옷) 디자인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 제품은 가슴 부분은 부피감이 있게 하고 허리는 잘록하게 보이게 하는 장점이 있다. 스팽스는 몸매에 민감해지는 여름에 답답하지 않게 착용할 수 있는 특수 소재를 쓴 여름용 한정 제품도 기획하고 있다. 화려한 색상, 우아한 디자인
또 한 가지 변화는 속옷도 화려하게 입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란제리 브랜드들은 신세대를 겨냥해 밝은 핑크나 주황, 민트 등 채도가 높고 화사한 색상을 담은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섹시한 속옷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얼룩말 무늬의 인기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는 얼룩말 무늬 속옷에도 핑크나 오렌지 등 유행하는 색상이 들어가 더욱 젊고 화사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요즘에는 과거 헐렁한 옷을 주로 입던 중장년층도 자수가 들어간 디자인이나 몸매가 드러나도록 딱 붙는 속옷 등 젊은층이 즐겨 입는 디자인을 선호하고 있다. 다만 올해는 전반적으론 과한 디자인보다는 레이스가 달렸다든지 무늬가 있다든지 등 한 부분만 강조한 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태경 GS샵 이너웨어팀장은 “올해 란제리 제품 디자인에서는 섹시함 대신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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