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현상학은 보편성과 엄밀성 두 얼굴 지녔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8일 03시 00분


‘현상학과 질적 연구’ 펴낸 이남인 서울대 철학과 교수

6일 서울대 인문대 철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이남인 교수는 “후설이 창안한 현상학은 양적 연구와 질적연구를 모두 아우르면서도 개별 학문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적이다”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6일 서울대 인문대 철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이남인 교수는 “후설이 창안한 현상학은 양적 연구와 질적연구를 모두 아우르면서도 개별 학문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적이다”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요즘 한국 학계에서도 ‘질적 연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 개념은 ‘양적 연구’와 대비할 때 이해가 쉽다. 양적 연구는 수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설문지를 이용한 표본조사를 통해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도출됐을 때 이를 이론화하는 것을 뜻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양적 연구가 현실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성이 나오면서 ‘질적 연구’란 용어가 나왔다. 연구 대상을 소수로 한정하고 장기간 심층연구를 통해 양적 연구가 간과하기 쉬운 심층적 통찰을 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2009년 미국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고고학 건축학 인지과학 심리학 사회학 언어학 정치학 간호학 교육학, 심지어 경제학까지 질적 연구가 수행되는 학문 분야가 30개를 넘어섰습니다. 양적 연구에 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지만 그만큼 그 성과도 높이 평가되면서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상학과 질적 연구’(한길사)를 펴낸 이남인 서울대 철학과 교수(56)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 20세기에 창안한 현상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그는 이전에 펴낸 ‘현상학과 해석학’(2004년) ‘후설의 현상학과 현대철학’(2006년) ‘지각의 현상학’(2013년)까지 3권의 현상학 연구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현상학과 질적 연구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질적 연구는 크게 현상학적 체험 연구, 해석학적 연구, 생애사 연구, 사례 연구, 민속지적 연구, 근거이론으로 나뉩니다. 현상학을 질적 연구방법론의 하나로만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만 현상학을 이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후설은 모든 학문의 뿌리로서 초월적 현상학(철학), 줄기로서 영역적 존재론(분과 학문별 기본개념)과 형식논리학(학문별 추론 규칙), 가지로서 여러 경험과학과 응용학문에 적용할 응용현상학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론을 전개했다. 따라서 현상학은 철학의 한 분과가 아니라 자연과학적 ‘양적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질적 연구’의 모든 방법론을 아우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후설의 초월적 현상학과 그 제자였던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후설의 초월적 현상학은 다시 전기의 ‘정적 현상학’과 후기의 ‘발생적 현상학’으로 나뉘는데 발생적 현상학은 이미 해석학적 현상학의 상당 부분을 선취했습니다.”

그가 이를 논파한 ‘현상학과 해석학’은 2005년 학술원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질적 연구 전체를 현상학으로 등치시키는 것은 또 다른 ‘학문 제국주의’가 아닐까.

“현상학은 엄밀학과 보편학이라는 두 얼굴을 지닙니다. 모든 학문을 뛰어넘는 보편학으로서 현상학이 제국주의적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별 학문의 고유 사태에 걸맞은 고유의 방법론을 추구하는 엄밀학으로서 현상학은 다원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적 제국주의와는 차별됩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현상학과 질적 연구#이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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