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를 그린 영상물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를 즐기다 보면 ‘영웅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이런 무의식은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면서 외면하게 만드는 면죄부가 될 수 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저자는 해나 아렌트가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지칭해 유명해진 ‘악의 평범함’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나치전범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항변하지만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양심을 좇아 총을 내려놓은 소수의 독일군도 있었다. ‘선의 평범함’을 보여주는 소시민적 영웅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립국 스위스. 독일에서 탈출한 유대인 난민을 받지 말라는 상부 명령을 어기고 수백 명의 불법입국을 눈감아줬다가 파면당한 경찰서장 파울 그뤼닝거. 1991년 발칸반도에서 인종학살이 벌어졌을 때 세르비아인임에도 크로아티아인들을 세르비아인이라고 속이고 15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알렉산드르 제브비치.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폭탄테러 용의자 소년이 미군의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을 했음을 폭로한 군 법무관 대럴 밴더빌트….
저자는 이들이 투철한 신념의 화신도 아니고 추악한 뒷거래로 이익을 챙긴 배신자들도 아님을 발로 뛰어 입증한다. 그 대신 그가 발견한 것은 그들이 특별할 게 하나 없는 겁 많고 소심한 이웃이다. 우리처럼 일자리를 잃을까 고민하고, 적당히 타협도 할 줄 알고, 남들 눈에 너무 튀지 않으려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런 힘겨운 결정을 내렸을까. 저 높은 곳에서 명령만 내리는 관료주의에 젖은 상사들과 달리 현장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과 호소를 직접 지켜봐야 했고 그래서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말한 것처럼 “과부와 고아의 얼굴로 문을 두드리는 이들”의 면전에서 문을 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슈퍼맨의 역할을 특별한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마라. 바로 당신이니까. 원제 Beautiful Souls(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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