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영예인 ‘올해의 음반’을 비롯해 ‘최우수 모던록 음반’ ‘최우수 모던록 노래’까지 세 부문을 휩쓴 싱어송라이터 윤영배(46)는 제주 한경면 고산리에서 농사지으며 산다.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입문했지만 2010년에야 첫 솔로 음반을 냈다. 17년간 하나음악(지금의 푸른곰팡이)에 속한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과 교류하며 작사 작곡자로 조용히 활동했다. “(제 곡을) 제가 부르나 (장필순) 누나가 부르나….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지난해 낸 세 번째 앨범 ‘위험한 세계’(사진)는 약자에게 포악한 사회를 향해 날이 선 메시지를, 포크와 모던 록에 기반한 차분한 악곡과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담은 대조법으로 유별난 음악성을 표출했다. 사랑 노래만큼 달콤하고 유려한 멜로디에 ‘나는 비매품이라 나를 팔지는 않아’(‘선언’) 같은 뼈 있는 가사를 담았다. ‘위험한 세계’의 표지는 그의 부인이 복사기에 얼굴을 갖다대고 촬영한 이미지다. “산업사회에 관한 이미지로 읽힐 수도 있겠죠.”
뜨거운 메시지를 핏대 선 외침이 아닌 내성적 속삭임에 담아내는 낯선 감정 치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조용한 것이 정서적으로 더 깊은 울림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있었죠. 골다공증 같은 목소리며, 음악도 그렇고. 우리가 그런 부류잖아요. ‘나지막한 게 더 강할 수 있다’는 믿음.”
대구 출신으로 서울에 살다 2003년 부인과 함께 제주에 터전을 잡은 그는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멘토다. 이상순은 앨범 전반에 걸쳐 연주와 편곡 파트너 역할을 했다. ‘목련’이란 곡에서는 이효리와 윤영배가 함께 노래한다. “에이, ‘쟤들’이 공부를 엄청 많이 해요. 책도 저보다 더 많이 볼걸요. 생각이 깊은 애들이에요.”
그의 제주 생활은 음악 생활의 연장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서울의 녹음실 안에서 보내면서 무슨 자유와 자연과 새를 노래하겠느냐는 불편한 생각이 있었어요. 밭에서 풀 뽑고 나무하는 게 곧 (음악) 연습이죠. 밭일하다 악상 떠오르면? 그냥 놔줘요. 흘러가버리게. 삶이 예술이라면 농부도 예술가이고. 음악처럼 살기를 바라는 거죠. 제주 집에는 기타도 없어요.”
쇤베르크(1874∼1951)에게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올해 만들 네 번째 앨범에서 음악적 구조를 더 파고들려고 한다. “음 사이의 간격과 높낮이가 주는 긴장감과 속도감…. 음악 구조로써 우리가 속한 사회를 은유하고 싶은 거죠.” 지난해 노래 ‘위험한 세계’에 넣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베이스 음 역시 실험의 한 예다. “화음보다 주파수 대역이 청자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더 많이 염두에 두는 편이에요. 훨씬 더 냉철하고 이성적인 곡이 됐으면 해서 베이스의 낮은 줄을 정상보다 낮게 조율해 연주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그는 당분간 ‘위험한 세계’를 노래하는 걸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시금치, 배추, 마늘, 완두…. 100평(330m²)쯤 되는 텃밭을 손으로 하니까 만만한 게 아니에요. 돌아서면 풀이 나죠. 근데 둘러보세요. 여긴, 풀 한 포기 안 나는 난폭하고 참혹한 사회죠. 땅, 바람, 공기, 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위험한 세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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