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들국화는 온전히 피지 못해도 전인권은 돌고 돌고 계속 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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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9일 월요일 맑음.
다시 돌고 #99 전인권 ‘돌고 돌고 돌고’(1988년)

전인권의 노래는 어쩔 수 없이 들국화를 불러냈다. 전인권컴퍼니 제공
전인권의 노래는 어쩔 수 없이 들국화를 불러냈다. 전인권컴퍼니 제공
어젯밤에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이 10년 만에 연 솔로 콘서트에 다녀왔다.

지난해 27년 만에 나온 들국화의 새 앨범에 담긴 신곡들을 처음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기회여서인지 객석은 가득 찼다. 콘서트 제목은 들국화 새 음반 첫 곡 제목이기도 한 ‘걷고, 걷고’.

근데 난 이 공연을 ‘돌고 돌고 돌고’라 부르고 싶어졌다. ‘걷고, 걷고’나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지난해 들국화 공연에서도 들을 수 있었지만 정말 처음 듣는 ‘겨울비’ ‘재채기’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만큼은 아니었지만 은은히 가슴을 울렸다.

반백의 곱슬머리를 뒤로 땋아 내리고 선글라스를 쓴 전인권의 보컬은 점입가경이었다. 2012년 재결합 때부터 오랜 공백과 굴곡을 뚫고 패기에 찬 목소리를 들려준 그이지만 공연이 거듭될수록 그 끝은 더 날카로워지는 듯했다. 게다가 관록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건반 주자 정원영이 전인권의 양옆에 해치처럼 버티고 앉아 연주하니 마치 왕좌의 게임을 보는 듯했다.

전인권이 지은 곡에는 유독 주술처럼 중독적이고 반복적인 외침이 많다.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를 열댓 번 반복해도 지겹지 않고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노래하며 다시…’를 30번 불러도 31번, 41번 부르고 싶게 하는 맛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그 반복구들을 끝없이 따라 하며 즐거워했다.

‘돌고 돌고 돌고’는 윤도현 밴드(지금의 YB)가 여전히 그들 최고의 음반으로 꼽히는 4집 ‘한국 록 다시 부르기’(1999년)에서 힘찬 기타 반복 악절을 더해 재해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를 반복하는 ‘걱정말아요 그대’ 역시 카논 변주곡처럼 아름다운 중독성을 지닌 곡이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다 졌다 싶을 때 폈던 들국화와 전인권의 음악 여정이 그런 반복구를 닮았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뿐이었다. 들국화 신작에 실렸던 김민기의 ‘친구’를 전인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없었던 것과 들국화 신작의 마지막 곡 ‘들국화로 필래’를 최성원의 목소리로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드러머 주찬권은 지난해 세상을 뜨고 없지만 전인권, 최성원 두 사람은 아직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

돌고 돌고 돌다 보면 ‘들국화 콘서트’를 다시 볼 날이 올까. 다시 핀 그 꽃을 마주했던 지난 2년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아쉬워지고 헤매이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계획하고/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다시 돌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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