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고… 쫓겨나고… 아파트의 빛과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아파트 인생’

1957년 세워진 서울 종암아파트의 모습. 한국에서 최초로 일반 분양한 아파트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57년 세워진 서울 종암아파트의 모습. 한국에서 최초로 일반 분양한 아파트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어떤 이에게 그곳은 꿈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절망이기도 했다. 혹자에겐 보금자리였으며, 다른 이에겐 터전을 빼앗는 괴물이었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그 모든 것이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이 개최한 특별전 ‘아파트 인생’은 관람할수록 감정이 혼란스러워졌다. 슬쩍 미소가 머금어졌다가 한숨이 나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몄다가 괜스레 너털웃음이 나왔다.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광복 뒤 1957년 처음 일반 분양했던 서울 성북구 종암아파트 이후 본격적으로 아파트단지의 시대를 연 건 1962년 마포형무소 자리에 세워졌던 마포아파트였다. 6층 10개동으로 이뤄졌던 이 아파트는 수세식 화장실과 엘리베이터를 갖춘 현대식 아파트를 표방했으나, 결과는 이도 저도 없는 어정쩡한 형태였다. 전시된 당시 살림살이를 보면 부엌엔 아궁이가 들어섰고, 창문은 창호지로 도배한 나무 창살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이나 최하층 노동자가 사는 공간이란 인식이 강했다. 정부도 골격만 지어놓고 내부 공사는 입주자가 알아서 하란 식이었다고 한다. 정수인 학예연구사는 “당시 서울시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아파트’를 마구 세웠다”며 “1969년 한 해에만 서울에 406개동의 아파트를 건설했다”고 설명했다. 1970년 무너진 마포 와우아파트는 공사 기간이 단 3개월이었다.

1971년은 아파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였다. 용산구 한강맨션아파트에 최초로 싱크대를 만들었고 중앙난방을 도입했다. 본보기집(모델하우스)을 처음 선보인 것도 이 아파트였다. 같은 해 건설된 12층짜리 여의도시범아파트는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들어선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삶을 바꾸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1970년대부터 쾌적한 삶을 보장하는 중산층의 상징물이 됐지만, 반대로 아파트 건설과 함께 기존 거주자들이 쫓겨나는 아픔을 양산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당시 철거민은 서울 전체 인구의 20%, 약 70만 명에 이르렀단다. 대대적인 철거민 운동을 촉발한 계기도 아파트였다.

전시에서 가장 아련한 공간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오랜 세월을 그곳에 보낸 이들의 옛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다. 1983년 입주한 이 아파트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에겐 고향과도 같은 존재지만 조만간 재건축에 들어갈 예정. 정 학예사는 “스스로 아파트 키드라고 부르는 이들은 이제 곧 또 다른 의미의 ‘실향민’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1978년 건립된 서초삼호아파트의 한 가구를 통째로 옮겨놓은 전시장도 인상적이다. 5월 6일까지. 무료. 02-724-0274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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