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6> ‘또 다른 장그래’ 황인성, 유럽에 한국 바둑을 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14시 49분


요즘 프랑스에 머물며 유럽에서 바둑보급 활동을 하고 있는 황인성 이세미 씨 부부.
요즘 프랑스에 머물며 유럽에서 바둑보급 활동을 하고 있는 황인성 이세미 씨 부부.

또 다른 장그래가 있다. 인기 바둑만화 '미생(未生)'의 주인공 장그래가 바둑이 아닌 길로 새 삶에 도전했다면 현실 속 황인성 아마 7단(32)은 바둑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둘 다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프로 기사를 꿈꿨으나 좌절했다. 장그래는 바둑 고수임을 숨기고 샐러리맨으로, 황인성은 바둑환경이 척박한 유럽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일에 승부를 걸었다.

황인성, 그를 12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4층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윤태호 작가가 미생을 쓰기위해 취재했던 사람 중의 하나"라고 소개했다. 유럽에서 함께 바둑 보급 활동을 하고 있는 부인 이세미 씨(30)도 나왔다. 두 사람은 스폰서와 비자 문제로 일시 귀국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당초 11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황 씨가 급하게 스폰서와 만나게 됐다며 연기를 요청해와 이날 만나게 됐다.

먼저 스폰서 문제가 잘 해결됐는지 물었다. "'유럽 유소년 바둑보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지 교사들을 모아 바둑 워크숍을 한 뒤 그들이 돌아가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자는 계획입니다. 몇 년 간 보급활동을 하면서 내가 직접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보다 교사들이 바둑을 보급하는 게 더 빠르고 효과적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올해는 교사 29명이 바둑 워크숍을 신청했어요. 이들이 가르치는 학생이 1000명 정도 됩니다. 3년 안에 바둑을 배우는 학생을 3000명 정도로 늘리고 싶어요. 올해도 6월 워크숍이 열리는데 그 비용과 각종 기자재, 바둑판 바둑알 바둑책 등을 기도산업 박장희 회장님이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도 지원을 해주셨는데 바둑 보급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황 7단은 박 회장이 '함부르크 기도컵 대회'를 5년째 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회는 선수 200명 정도가 참가하는 유럽의 5대 바둑대회 중 하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프랑스-독일 바둑 교류전. 오른쪽부터 황인성 씨, 조세 씨. 황인성 씨 제공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프랑스-독일 바둑 교류전. 오른쪽부터 황인성 씨, 조세 씨. 황인성 씨 제공

그가 유럽 바둑보급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05년. 프로입단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바둑TV를 3년 동안 진행하며 이름이 알려지면서 2030바둑클럽을 만들고 청년아마바둑모임회장을 맡는 등 잘나갈 때였다. 그는 연구생 친구나 명지대 바둑학과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송으로 번 돈을 쓰고 다녔다(당시 동료 중 한 명이었던 김남훈 씨(30)가 올해 늦깎이로 프로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 기사들을 보면 주눅이 들고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명지대 한상대 교수로부터 "베를린에 가 바둑을 가르쳐볼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베를린바둑협회 회장이 '숙식을 제공할 테니 바둑 고수를 보내 달라'고 요청 해왔다고 한다. 한 교수가 자신을 추천한 이유는 "활달하고 적극적이어서 잘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는 뭔가 부족한 것도 채우고 입대 전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며 베를린행을 택했다.

하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고수임을 입증해야 했다. 유럽에서 열리는 각종 바둑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알렸다. 그렇지만 대회에서 받은 상금과 간헐적인 바둑 강의 수입으로는 생활을 꾸려가기도 벅찼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는 입대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뒤돌아보면 어렵게 보낸 1년이었지만 '앞으로 혼자서 꾸려갈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은 얻었다. 2006년 말 입대해 2008년 말까지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바둑대회에서 강의 중인 황인성 씨. 황인성 씨 제공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바둑대회에서 강의 중인 황인성 씨. 황인성 씨 제공

2009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때부터는 실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6개월, 다시 베를린에서 1년을 머물며 동선을 넓혀나갔다. 관록도 붙기 시작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 횟수가 늘어나면서 2010년에 유럽랭킹 2위에 올랐다(얼마 전 그는 1위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바둑대회에 참가하기보다는 바둑을 가르치는 '마스터'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혀간다. 2010년에 스위스바둑협회 지도사범이 됐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등 새로운 곳도 개척했다. 처음에는 아무 지원 없이 홀로 뛰었으나 2010년부터 대한바둑협회로부터 매년 1000만 원 정도를 지원받고 있다.

황 7단이 요즘 머물고 있는 곳은 프랑스 남부 리옹 부근의 그레노블 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바둑 인생에서 결정적 인연을 만난다. 현지 과학교사인 조세 씨다. 조세의 도움으로 그는 초등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면서 프랑스 바둑협회 지도사범이 된다. 매달 일정한 봉급도 받는다. 이 명함은 그가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내가 인복이 많은가 봐요. 조세 씨를 만난 것도 그렇고요." 이 부분에서는 부인 이세미 씨도 거들었다.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처음에 거처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는 우리 부부가 한동안 조세 씨의 장인 집에서 머문 적도 있어요." 황 씨는 2005년 처음 베를린을 찾았을 때 도움을 준 벤하르트 룽거 전 베를린 바둑협회장도 좋은 인연으로 꼽았다.

좋은 인연 중 최고는 역시 부인 이세미 씨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사귀게 된 것은 2010년 여름. 당시 황 7단은 잠시 귀국해 있던 때였다. 그때 사이버오로 W-바둑 팀에서 바둑 세계화 사업을 맡고 있던 사람이 바로 부인 이 씨였다. 이 씨는 명지대 바둑학과 2년 후배로 아마 3단의 실력.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등 해외 바둑보급에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은 첫 만남 이후 사랑을 키워오다 2011년 11월 결혼했다. 이 씨는 요즘도 주말에 W-바둑에 칼럼을 쓰고 있다.

황 7단은 초기에는 유럽에서 한국 바둑을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이미 일본의 레슨프로들이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보급 활동을 해온 탓에 '아타리(단수)' 등 일본 용어가 널리 퍼져 있었다. 물론 바둑도 '고(Go)'로 불렸다. 그는 처음에 '바둑' '단수' '젖히다' '걸치다' 등으로 한국화를 시도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요즘에는 용어에 매달리기보다 한국 바둑문화를 버무려 전하는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유럽 바둑인들은 '면도날' '우주류' '지하철 바둑' 등 일본 기사들의 이름과 그 특징을 줄줄이 꿰고 있다. 그래서 그는 바둑 강의나 워크숍 등에 참석할 때 한국 기사들의 특징을 소개해주며 한국 바둑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강의 중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최철한 9단을 소개하면서 그의 별명이 '독사'라고 소개해주거나, 연구생 시절 기록계시를 할 당시에 보았던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 등의 대국 중 버릇을 알려주면 재미있어 했다. 그런 때문인지 요즘 '바둑' '사범님'하고 한국말로 부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바둑을 가르치는 데 조금 느긋해졌다고나 할까. 거기에는 한 바둑대회에서 만난 벨기에 노인의 말이 크게 도움이 됐다.

"그분은 '동양 사람들은 오늘을 즐길 줄 모른다. 내일, 또 내일만을 이야기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인데…'라고 말했다. 머리를 뭔가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돌아보면 연구생 시절엔 결과 위주의 훈련을 받았다. '프로가 됐느냐, 아니냐' '이겼느냐, 졌느냐' '실력이 늘었느냐, 아니냐'는 식이었다. 노인을 만난 이후로는 가르치는 동안 즐겁고, 바둑을 두는 동안에도 즐거워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즐기다 보면 바둑도 는다. 또 천천히 늘면 어떤가. 유럽 사람들은 과정을 즐기고 중시한다. '어디까지 갔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보는 것 같다."

황인성 씨는 현재 프랑스 그레노블 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황인성 씨 제공
황인성 씨는 현재 프랑스 그레노블 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황인성 씨 제공

황 7단은 요즘 바쁘다. 1주일에 2번씩 그레노블 시 초등학생 50명에게 바둑을 가르친다. 또 매일 온라인에서도 3, 4시간 바둑을 가르친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초청받아 강의를 한다. 연간으로 치면 20~25번 정도. 물론 강의료를 받는다. 또 30, 40명이 참가하는 바둑캠프도 열고 있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유럽 바둑인구는 독일 1만 명, 프랑스 1만 명, 나머지 유럽이 1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 연간 회비(약 8만~12만 원)를 내는 회원들이 독일과 프랑스에 각각 2000명 정도 된다. 그는 "프랑스 사람들은 바둑을 사람과 사람의 매개체로 보고 사귀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독일 사람들은 그냥 바둑을 즐긴다고나 할까, 그게 차이라면 차이"라고 말했다. 바둑 인구는 적지만 대개 마니아여서 소규모의 바둑대회가 많이 열린다. 독일에만 60개, 유럽 전체로는 500개 정도나 된다.

황 7단은 최근 온라인 바둑도장인 '연구생 도장'을 만들었다.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실력에 따라 조를 나누고 리그전을 벌여 승급하거나 강등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3년째 운영 중인 유럽 연구생 도장의 회원은 75명, 올해부터 운영 중인 미주 연구생 도장은 회원이 20명 정도. 조별로 6명 정도씩 매달 리그전을 펼친다. 잘하는 2명은 상위조로, 못하는 2명은 하위조로 떨어진다. 황 7단은 판마다 온라인에서 복기해준다. 한 달에 180판 정도 된다. '이 수가 잘못됐고, 저 수가 좋다'는 식으로 지도하다 보면 실력이 빠르게 늘어 회원들이 좋아한다. 물론 회원들로부터 일정 회비를 받고 있다.

황인성 이세미 씨 부부. 스위스 루체른 바둑대회에 갔다가 아름다운 호수 옆에서 한 컷.
황인성 이세미 씨 부부. 스위스 루체른 바둑대회에 갔다가 아름다운 호수 옆에서 한 컷.

초등학교 5학년 때 바둑을 배웠으나 프로기사가 되지 못해 좌절했던 그는 요즘 "바둑배우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는 거창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늘려가고 싶고, 우리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부인 이 씨는 "남편을 따라 여러 곳에서 동호인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며 "보는 풍경이 모두 그림엽서 같은 스위스의 샤텔상드니 같은 데서 생활한 것은 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쯤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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