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항문질환을 잘 먹어 생기는 선진국형 질환, ‘부자병(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보릿고개가 어른들이나 기억하는 추억이 됐지만, 봄날 배곯는 이에게 엉덩이가 찢기는 아픔은 과장이 아니었다. 워낙 먹질 못하다 보니 신진대사가 원활치 않았고, 변비로 인해 고통 받는 이가 많았다.
조선시대에 이런 춘궁을 견디는 대표적 구황식물 가운데 하나가 솔잎이었다. 김호 경인교육대 교수가 쓴 글 ‘굶주린 백성에게 솔잎을’에 따르면 멀건 미음으로 끼니를 때워 체력이 떨어진 백성에게 솔잎을 빻은 가루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훌륭한 대체식품이었다. 중종 36년(1541년) 안위와 홍윤창이 간행한 ‘충주구황절요(忠州救荒切要)’도 “솔잎은 먹을 수 있으니 연명에 도움이 된다. 풀죽에 솔잎가루를 섞어 먹으면 (건강에도) 훨씬 좋다”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솔잎에 심각한 약점이 있었으니 변비 유발이었다. 맛도 텁텁하지만 ‘하도(下道)가 막혀 용변을 볼 수 없는’ 부작용이 빈번했다. 굶주리는 것도 속상한데 항문까지 탈이 났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충주구황절요는 “날콩을 여러 차례 씹어 삼키면 통한다”고 했지만, 솔잎 뜯어먹는 처지에 콩 구하는 일이 말처럼 쉬웠을 리 없다.
당대에도 솔잎 변비는 큰 고민거리였던지 해결책을 제시한 사료도 눈에 띈다. 명종 9년(1554년) 정부가 반포한 ‘구황촬요(救荒撮要)’에는 “구황엔 솔잎이 가장 좋지만 대변 막히는 걱정이 없으려면 느릅나무 껍질 즙을 먹어라”고 권장하는 대목이 나온다. 먹을 게 없어 나뭇잎을 뜯어먹는데, 그로 인한 질환을 멈추고자 또 다른 나무껍질까지 먹어야 했다. 이래저래 똥구멍이 찢어지는 아픔은 참으로 서럽고 애달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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