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축복은 어느 순간 딜레마가 된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를 개척해 중대형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꼽히는 명성교회의 김삼환 담임목사(69)와 아들 김하나 목사(41)가 변칙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아들 김 목사는 8일 경기 하남시에 세워진 새노래명성교회 창립 예배에서 담임 목사로 취임했다. 이 교회는 명성교회가 토지와 건축 비용을 들여 분립, 개척한 것으로 기존에 운영하던 하남기도실 교인 600여 명을 흡수했다. 교회 세습을 반대해온 한 단체는 성명에서 “새노래명성교회 창립은 변칙된 교회 세습”이라고 주장했다. 아들 김 목사는 지난해 교회 세습을 금지하기로 한 소속 교단인 예장 통합의 결의와 관련해 “세습 금지는 하나님이 주신 시대의 요구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신교의 교회 세습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길자연 목사와 현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도 각각 왕성교회(길요나 목사)와 경서교회(홍성익 목사)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일각에서는 아들 목사가 교회 개척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유능하다면 세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후임 목사와 원로목사의 갈등으로 혼란에 빠진 교회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세습 문제를 바라보는 원칙은 역설적으로 김하나 목사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세습 금지는 구차한 이유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신 시대의 요구, 즉 신앙과 시대적 요청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볼 때 피할 수 없는 명제다. 부와 권위를 물려받고 있는 일부 2세 목사와 달리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열악한 현실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 교회 5만여 곳 중 4만여 곳이 미자립 상태라는 통계도 있다.
기업 세습도 문제가 되는 게 요즘 세상이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자수성가한 기업처럼 교회를 ‘지상의 왕국’으로 만들어 아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아들과 교회를 위해 2세 목회자를 고난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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