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무레 요코 지음·김난주 옮김/231쪽·1만2000원/블루엘리펀트
몸과 마음이 지친 날 터덜터덜 걸어가서 구석 자리에 털썩 앉고픈 작은 가게,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는 말수 적은 여주인. 그가 신경 써 고른 재료로 정성껏 차려낸 음식을 꿀꺽 삼키면 고단한 하루를 도닥일 수 있을 것 같다. ‘카모메 식당’에서 헬싱키의 주먹밥 가게로 초대했던 작가는 2012년 작인 이번 소설에선 도쿄의 작은 샌드위치 가게로 안내한다.
50대 싱글 여성 아키코는 일하던 출판사의 불합리한 인사이동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엄마의 식당을 리모델링해 빵과 수프가 메뉴의 전부인 조그만 가게를 차린다.
가게 앞 찻집 주인, 엄마 가게의 단골이었던 동네 아저씨들이 이런저런 참견을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아키코는 엄마처럼 시중에서 파는 볶음 양파를 쓰거나 양파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간편하게 수분을 없애지 않고 직접 썰어 냄비에 오래 볶는 쪽을 택한다.
그의 곁에는 어느 날 집 앞에 나타난 길고양이 타로와 가게 일을 돕는 시마가 있다. 둘 다 말이 없어도 아키코와 마음이 통하고 순간의 감정을 공유한다.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자신, 머리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꼬박꼬박 조는 고양이가 만족스러운 하루를 만든다. 하지만 선물처럼 나타났던 타로가 느닷없이 떠나고, 아키코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친아버지와 이복오빠의 소식을 우연히 듣는다.
아키코는 올케로 추정되는 여인에게 예상치 못한 위로를 얻은 뒤 하루하루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 우는 날도 있고 울지 않는 날도 있다. 시마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가운데도 소소한 행복이 숨어 있고, 그 비밀을 알아채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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