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진이나 영상 편집본인데 ‘○○○의 하루’란 거다. 보통 당대의 스타 이영애 전지현 이효리가 주인공. 워낙 얼굴을 내미는 광고가 많아 그것만 엮어도 웬만한 일상을 커버한다는 얘기다. 최근엔 ‘응사의 하루’가 회자됐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흥행하자 출연진이 온갖 광고를 석권하고 있지 않은가.
웃자고 만들었으나 담긴 메시지는 은근하다. 인기에 기대 무더기로 찍어대는 광고에 거부감도 작용했겠다. 전지현 화장품 쓴다고 전지현 급 미모가 되는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우리는 혹하고 지갑을 연다. 이처럼 광고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생산과 소비의 음험한 순환을 세련되게 포장해 보여주는 계기판이다.
연세대 강사인 저자는 국문학 전공자이지만 근대문화, 특히 광고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스스로도 “시를 공부하다 광고 연구로 변절한, 혹은 문학 연구 지형에서 꽤나 이탈한 학자”라 부른다. 광고와 같은 여러 매개체를 통해 자본주의 이전과 이후, 안과 밖이 규정하는 삶의 결을 찾는 게 관심사란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초점을 맞춘 책은 당시 주로 신문 잡지에 실린 인쇄 광고를 통해 한국 소비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자라났는지를 훑는다. 저자는 이를 출세와 교양 건강 섹스 애국이란 5개의 범주로 나눠 살폈다. 이들이 당대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일 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적 준거가 소비문화와 일으키는 상호작용이 지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세’라는 키워드를 보자. 당시 광고에는 소비자를 부르는 새로운 호칭이 엄청났다. 당신을 비롯해 공(公), 피씨(彼氏·그분), 귀하, 신사숙녀 같은 말이 쏟아졌다. 이전까지 계집이나 아낙으로 부르다가 ‘여성’으로 호명한 것도 광고였다. 청년과 어린이란 말 역시 이때 생겼다. 물론 광고가 이런 용어를 창조한 건 아니나, 얼른 가져다 쓴 건 분명하다. 손님은 왕인데 뭐라고는 못 부를까.
여기엔 근대(혹은 자본)가 지향하는 함의가 명확하다. 조선사회에서 사대부나 들음직한 칭호가 불특정다수이긴 하나 모든 계층으로 확산됐다. 반상(班常)의 고하도 남녀 차별도 광고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백보환’이란 약 광고의 “특별한 귀족 양반만 쓰던 비방 보약인데 현대에는 누구든지 자유로 쓸 수 있게 됐다”는 문구는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낸다.
이는 또 다른 계급 서열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다. 이제 모든 건 물건을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잣대가 된다. 1920∼30년대 학교와 학원, 수험서 광고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학교를 들어가거나 어떤 시험에 붙는다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 유혹한다. 1935년 창간된 월간지 ‘조광(朝光)’의 ‘최신 중학 강의록’ 광고엔 “사회에 나와서 성공하는 것은 반드시 중학 졸업의 실력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라고 당대를 규정한다. 이처럼 광고가 지닌 근대의 이중성은 교양이나 건강, 심지어 애국에서도 엇비슷하게 드러난다.
재밌는 것은 책도 줄곧 지적하듯, 이런 양상이 꼭 근대만의 풍경은 아니라는 점이다. 출세를 놓고 봐도, 숱한 입시와 유학 광고가 지금은 사라졌던가. 근대도 중세라는 부모가 있듯이, 현대 그리고 21세기도 근대의 자양분을 먹고 자랐다. 당시에 형성된 사회적 가치관은 여전히 시대의 연장선에서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든 학자답게 책은 한정식 한상을 제대로 차려냈다. 광고를 주로 삼았으나 문학과 예술을 적절히 인용하며 쫄깃하게 풀어내 읽는 즐거움이 푸짐하다. 다만 이런 스타일이 다 그렇듯 한 우물을 진득하게 파고드는 맛은 좀 아쉽다. 다 손이 가고 평균 이상인데 메인요리를 딱 꼽기는 애매하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런 밥상이 나중에도 생각나고 또 찾게 되리라. 우리가 자꾸만 근대를 되돌아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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