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한자문화권에서 명문장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당송팔대가. 한문학을 배우지 않은 요즘 사람은 대부분 이들이 수사학적 기교가 뛰어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실상은 그 반대다. 이들은 신하가 왕에게 글을 올릴 때 4자나 6자로 대구를 이루면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사륙변려문에 반기를 든 문체혁명가였다.
팔대가는 당송시대 크게 유행했던 변려문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거짓과 빈말만 양산하는 방탕한 글이라 비판했다. 그 대신 평이한 어휘, 명쾌한 논리,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진솔한 문장을 추구했다. 그들은 ‘문예를 위한 문예’를 배격하고 내용에 있어서 현실 비판 의식과 형식에 있어서 참신함을 강조했다. 루쉰(魯迅)으로 대표되는 현대 중국의 백화문과 통하는 면이다.
중국 문학과 언어학의 대가였던 우멍푸(吳孟復·1919∼1995)가 1985년에 집필한 이 책은 팔대가가 중국 산문 발전에 가져온 이런 혁명적 변화를 하나로 꿰뚫었다. 여기에 팔대가 각각의 삶과 사상, 문학적 특징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국내에선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책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한유(768∼824)와 유종원(773∼819)은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관직에서 좌천된 이후 사회모순에 눈뜨고 질박한 옛 문장으로 돌아가자는 고문운동을 펼쳤다. 한유의 경우 힘차고 자유분방하다는 점에서 이백에 비유할 수 있다면 유종원은 핍진한 묘사의 대가라는 점에서 두보에 비견할 만하다.
송대의 구양수(1007∼1072)가 시시콜콜한 일상어를 문학용어로 승화시켰다면 그의 제자 증공(1019∼1083)은 팩트와 숫자를 중시한 주도면밀함이 돋보였다. 왕안석(1021∼1086)은 심오한 논리를 구체적 예와 간결한 필치로 풀어내는 데 능했다. ‘삼소(三蘇)’의 아버지인 소순(1009∼1066)이 추상같은 기개와 논리를 자랑하고 동생 소철(1039∼1112)이 신중함과 섬세함을 지녔다면 형 소식(소동파·1037∼1101)은 산문적 논리와 시적 정취를 겸비해 ‘문장가들의 문장가’로 우뚝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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