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코쿠대가 보관 중인 안중근 의사 유묵. 왼쪽부터 계신호기소부도(戒愼乎其所不睹·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경계하고 삼간다·중용), 민이호학불치하문(敏而好學不恥下問·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논어). 류코쿠대 제공
일본 교토(京都) 시 후시미(伏見) 구에 있는 류코쿠(龍谷)대 도서관. 일본 연구자 5명이 전시대에 걸린 3점의 붓글씨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길이 1.5m, 폭 0.4m의 한지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눈길이 머문 곳은 이름 아래 도장을 찍는 낙관 자리. 도장 대신 손바닥이 찍혀 있었다. 네 번째 손가락 끝마디는 보이지 않는다. 도서관 관계자는 “류코쿠대가 중요문서실에 보관하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붓글씨)을 특별히 꺼냈다”고 소개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을 앞두고 모인 이들은 류코쿠대 사회과학연구소 산하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 소속 학자들이다. 이 센터는 안 의사를 연구하는 일본 유일의 연구기관으로 지난해 4월에 설립됐다. 3, 4개월에 한 번씩 심포지엄을 열며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센터에 소속된 연구자는 16명으로 모두 일본인이다.
올해 1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테러리스트’라고까지 표현한 인물을 왜 일본 학자들이 연구하는 걸까. 재일교포인 이수임(李洙任·경영학부) 류코쿠대 교수는 “스가 장관이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 안 의사는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지배에 저항하고 동양 평화를 외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센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시게모토 나오토시(重本直利·경영학부) 류코쿠대 교수도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반성하는 지식인이라면 대부분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높게 평가한다”고 동의했다.
센터 설립 계기는 대학 내에 있는 유묵 덕분이었다. 1997년 6월 이 유묵을 대학에 기증한 사람은 오카야마(岡山) 현에 있는 절 조신지(淨心寺)의 한 스님이었다. 1910년 3월 26일 안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기 전 중국 뤼순(旅順) 감옥의 포교사였던 조신지의 쓰다 가이준(津田海純) 스님이 안 의사의 유묵 3점과 사진 85점을 받았다. 대학 연구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매료돼 연구센터까지 세웠다.
이 교수는 “안 의사가 동양평화를 주장한 게 100년이 넘는다. 현 시점에도 영향을 주는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그의 통찰력에 놀란다. 그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알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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