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 작품은 객석의 모습을거울처럼 무대에 반영한다. 전 세계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 일본 연극 연출의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79)는 셰익스피어에 천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고전의 힘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다채롭게 변주돼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게 고전이다. 연극 ‘피의 결혼’ ‘노래하는 샤일록’ ‘메피스토’는 고전을 독특한 색깔로 풀어냈다. 》
○ 플라멩코와 우리 장단의 만남 ‘피의 결혼’
‘피의 결혼’은 결혼식 날 옛 연인과 도주한 신부와 그들을 뒤쫓는 신랑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스 비극을 스페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연출가 이윤택 씨는 플라멩코에 남도소리를 결합했다. 아코디언과 기타를 비롯해 장구 피리 가야금 태평소 등으로 음악을 연주한다. 이 씨는 “플라멩코는 스페인 민중들이 슬퍼하며 땅을 차고 우는 소리로, 남도소리처럼 한의 정서를 가진 데다 둘 다 3박자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플라멩코를 추고 농악의 상모도 돌린다. 대사뿐 아니라 노래, 소리, 움직임까지 세세한 볼거리를 갖춘 작품이다. 몸 훈련이 잘된 연희단거리패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씨는 “요즘 연극이 말만 하는 연기로 치닫고 있다”며 “‘피의 결혼’을 통해 말뿐 아니라 움직임의 연극을 보여줌으로써 연극이 지닌 연희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미숙이 신랑 어머니 역, 이승헌이 신랑 역을 맡았다. 27일∼4월 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 우리 이웃의 모습 ‘노래하는 샤일록’
‘야키니쿠 드래곤’ ‘아시안 스위트’로 잘 알려진 재일교포 3세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씨는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노래하는 샤일록’을 통해 소시민의 인생으로 담아냈다. 샤일록은 삶에 지친 고집 센 아버지, 딸 제시카는 결혼을 통해 현실 탈출을 꿈꾸는 여성이다. 정 씨는 “유대인 샤일록이 돈에 목숨을 거는 것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라며 “원작을 보면서 한 가정을 책임지려고 아등바등 사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인물들의 행동을 납득이 갈 수 있게 설정하다 보니 캐릭터가 원작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지게 됐다는 것.
악인과 선인의 경계도 무너뜨렸다. 정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악인도, 선인도 될 수 있다”며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기륭 윤부진 김정은 이윤재 등이 출연한다. 4월 5∼20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1688-5966
○ 또 다른 나 ‘메피스토’
음악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을 연출한 서재형 씨는 ‘메피스토’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중심을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로 옮겼다. 또 파우스트를 타락시키는 건 메피스토가 아니라 파우스트 자신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서 씨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유혹에 휩쓸리거나 일탈하고 싶은 순간을 많이 겪게 된다”며 “이런 순간순간이 메피스토이고, 결국 메피스토는 우리 안에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파우스트가 있는 곳은 답답하고 막힌 공간으로, 메피스토가 있는 곳은 넓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주로 남성이 연기했던 메피스토 역할은 여성인 전미도가 맡아 유혹과 파멸의 아이콘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파우스트 역은 정동환이 맡았다. 4월 4∼1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5만 원.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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