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공장 건물에 서린 김중업의 혼, 예술로 돌아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건축가 기리는 안양 ‘김중업박물관’ 28일 국내 첫 개관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이 그를 기념하는 공간이 됐다. 옛 제약회사의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김중업관’의 야경. 외부로 노출된 대형 구조물과 투명한 유리 벽면은 그의 초기 작품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위쪽 사진). 김중업의 설계 사무실 벽면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10년 넘게 일본 프랑스 미국에서 살았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한국과 서양, 미래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을 빚어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제공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이 그를 기념하는 공간이 됐다. 옛 제약회사의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김중업관’의 야경. 외부로 노출된 대형 구조물과 투명한 유리 벽면은 그의 초기 작품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위쪽 사진). 김중업의 설계 사무실 벽면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10년 넘게 일본 프랑스 미국에서 살았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한국과 서양, 미래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을 빚어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제공
《 김수근(1931∼1986)은 섬세하고 김중업(1922∼1988)은 호방했다. 대표작인 공간사옥(1977년)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2년)만 봐도 그렇다. 건축 스타일은 달랐지만 둘은 한국 1세대 건축가로서 개발시대를 주도한 거장이다. 하지만 김중업은 늘 김수근 이름 뒤에 따라온다. 사교적인 김수근은 괴팍한 김중업과 달리 제자를 많이 길러내 사후에도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타협할 줄 알았던 김수근과 다르게 김중업은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입바른 소리를 하다 49세이던 1971년부터 8년간 해외 추방을 당했다. 건축가로서 가장 왕성했을 시기다. 》

그런 건축가를 기념하는 ‘김중업박물관’이 28일 문을 연다. 건축가를 기리는 박물관은 한국에선 처음이다.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에 들어선 김중업박물관은 그가 1959년 완공한 제약회사 유유산업 공장 건물 6개동(총면적 4596m²)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그가 설계한 공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모형
주한 프랑스 대사관 모형
안양시가 2007년 공장부지를 사들여 굴뚝까지 옛것 그대로 살려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옛 공장 건물은 ‘김중업관’, 보일러실은 공연장과 세미나실이 있는 ‘어울마당’, 창고는 이곳 발굴 조사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한 ‘안양사지관’, 연구실은 교육과 특별 전시공간인 ‘문화누리관’이 됐다.

김중업관으로 꾸민 2층 건물은 명료한 구조체계와 엄격한 비례에 따른 벽면 분할, 투명한 벽체로 요약되는 그의 초기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기둥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외부로 노출시키고 벽면을 유리로 처리해 투명성을 높였다. 소박한 문틀과 문짝까지 옛날 그대로인 전시실로 들어서면 평양의 군수 아들로 태어나 거장으로 죽기까지 그가 남긴 건축 도면과 모형, 세계를 떠돌며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로 남긴 깨알 메모와 스케치가 담긴 건축수첩까지 100여 점이 방문객을 맞는다.

서울 중구 신당동 서산부인과 모형
서울 중구 신당동 서산부인과 모형
그는 프랑스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3년간 일했다. 1956년 자신의 사무실을 차려 선보인 약 200점의 작품은 그가 스승의 모더니즘 건축문법에서 벗어나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한 끝에 조형성 강한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강대와 부산대 본관, 건국대 도서관 등이 스승의 건축을 모방하고 변용하던 시기의 작품들이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한국 전통의 미를 건물 배치와 지붕선에 담아낸 작품이다. ‘한국 현대 건축의 원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걸작이지만 김중업은 프랑스 대사관이 예산 부족으로 설계비를 제때 주지 않아 부도 직전까지 갔었다(정인하, ‘김중업 건축론’).

이후엔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선보여 형식주의자라는 비난도 받는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둥근 자궁처럼 곡선이 인상적인 서울 중구 신당동 서산부인과(1965년)와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제주대 본관(1964년)이다. 제주대 본관 건물은 염분 섞인 해풍으로 건물이 부식돼 1996년 5월 논란 끝에 철거됐다.

건축가 김중업이 세계를 떠돌며 외국어로 남긴 깨알같은 메모와 스케치
건축가 김중업이 세계를 떠돌며 외국어로 남긴 깨알같은 메모와 스케치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당시 시공 기술이 감당하기에는 까다로운 디자인이어서 안전 문제로 철거되거나 보수공사로 원형이 훼손됐다. 큰아들 희조 씨가 박물관에 기증한 나무 모형에서 대표작들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김중업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라며 “그가 설계한 건물에서 그의 건축 세계를 볼 수 있게 돼 더욱 뜻 깊다”고 말했다.

박물관 개관에 맞춰 28일부터 6월 9일까지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개막전시가 열린다. ‘퍼블릭 스토리’를 주제로 박물관 곳곳에서 국내외 작가 작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안양=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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