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천하 미녀가 술 취한 듯 붉고, 저녁엔 하늘 향기가 옷깃 적시듯 하네(國色朝감酒 天香夜染衣).’(중국 당나라 시인 이정봉의 ‘모란시’에서)
모란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봄꽃이다. 기원전 약용식물로 재배하기 시작해 수나라 양제(569∼618) 시절부터 관상용으로 유행했다. 뭣보다 늦은 봄 풍성하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생김새 덕에 미녀나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었다.
서울 종로구 평창8길 한빛문화재단 화정박물관이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특별전 ‘사계화훼(四季花卉)’는 계절별 꽃과 나무를 소재 삼은 중국 청나라 유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세월 따라 향취를 전해주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예술과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음을 살필 수 있다.
모란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화재(畵材)로도 많이 쓰였지만, 꽃병이나 찬합에도 자주 새겼다. 전시작 가운데 ‘자수 꽃무늬 여성 상의’나 ‘분채(粉彩·도자기에 입히는 채색) 꽃무늬 병’도 모란으로 장식했다. 수선화와 버드나무도 봄을 대표한다. 다만 수선화는 고고한 문인의 절개를, 버드나무는 풍류나 이별을 나타냈다는 점이 달랐다.
복숭아나무는 독특하게도 꽃과 열매의 의미가 바뀌었다. 4, 5월 피는 복숭아 꽃(복사꽃)은 이번에 전시된 작자 미상의 ‘도화원기(桃花源記)’처럼 영원한 이상향을 표상했다. 그런데 7, 8월 열리는 복숭아는 세속적 무병장수의 상징이다. 19세기 ‘삼성도(三星圖)’에서 수명을 관장하는 수성(壽星)이 손에 쥔 게 복숭아다. 여름 꽃인 연꽃은 진흙탕에서 꽃을 피워 ‘군자의 꽃’이라 칭송받는가 하면, 씨앗을 많이 맺어 민간에선 다산(多産)의 징표로 받아들여졌다. ‘연화원앙도(蓮花鴛鴦圖)’는 부부 금실과 자손 번창을 바라는 속내가 담긴 것이다.
이 밖에 가을 국화와 겨울 소나무, 대나무를 그린 회화와 공예품까지 모두 62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모두 올해 1월 별세한 한광호 한빛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이 수집한 작품들이다. 조희영 학예실장은 “꽃과 나무마다 지닌 상징성이 달라 이를 해석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12월 31일까지. 3000∼4000원. 02-2075-011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