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추억 깨우는 빛과 그리고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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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 ‘기억극장’전 & 한경우 ‘I MIND’전

어린 시절 잠들기 전에 즐겨 하던 그림자놀이가 요즘은 현대미술의 표현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손으로 동물 그림자를 만드는 놀이를 새롭게 접근한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종종 마주치게 된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달의 변주곡’전에서는 일본작가 료타 구와쿠보가 100엔 숍에서 사 모은 잡동사니와 장난감 기차레일로 움직이는 도시 풍경을 보여주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액체문명’전에선 이창원 씨가 폭력을 포착한 보도사진과 거울을 이용해 숲의 평화로운 정경을 그림자로 그려낸다. 흔하디흔한 물건으로 믿기지 않는 시각적 환영을 연출한 작업인지라 단숨에 관객 마음을 붙잡는다.

서울 코리아나미술관의 ‘뮌-기억극장’전과 송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한경우 씨(35)의 ‘I MIND’전은 날로 진화하는 그림자 이미지의 활용 사례를 접하는 자리다. 42세 동갑내기 부부 김민선 최문선 씨로 구성된 ‘뮌’은 기억의 본질에 대해, 한 씨는 고정관념으로 인한 감각의 오류를 각기 탐색했다. 주제는 달라도 작품의 소재로 그림자를 활용한 점이 공통적이다. 겉으로 보이는 그림자 세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그 너머의 세계, 실재하는 현실에 대해 균형감각을 갖도록 일깨우는 전시들이다.

‘기억극장’-웅장한 이미지 교향악
‘뮌’의 ‘오디토리움’은 모호한 그림자 극장을 통해 기억의 불안정성을 은유한다.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뮌’의 ‘오디토리움’은 모호한 그림자 극장을 통해 기억의 불안정성을 은유한다.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기억극장’은 2006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뮌이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작업 초점이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서 이번 전시에선 기억으로 이동했다. ‘극장’이란 틀로 기억의 구조를 낱낱이 해부하는 영상 설치작품 11점은 대부분 튼실한 내용을 갖췄다. 다섯 개의 책장을 반원형 극장처럼 배치한 ‘오디토리움’이 특히 관심을 모은다. 그림자를 통해 웅장한 이미지 교향악을 들려주는 대형 설치작품이다.

작가들이 수집하거나 제작한 수백 개의 소소한 물건들은 불투명 아크릴판 뒤에서 조명을 받아 상상으로 충만한 그림자 극장을 연출한다. 거대한 수레바퀴, 폐허, 군중 등 개인과 사회의 기억이 중첩된 이미지가 무작위로 연결되면서 관객을 낯선 시공간으로 끌어낸다. 뒤죽박죽 이어진 그림자 극장처럼 사람의 기억 역시 불안정하다는 것을 은유한다. 자신의 경험과 희망사항을 반영해 기억을 주관적으로 변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야광 물감으로 그린 벽화 위로 영상을 투사한 ‘세트’는 기억의 잔상효과를 말하고, 주기적으로 열고 닫히는 커튼과 영상을 결합한 ‘커튼 콜’은 기억의 소환과 소멸을 우연성과 연계한다. 5월 31일까지. 2000∼3000원. 02-547-9177

‘I MIND’-보이지 않는 실재 돌아보기
한경우 씨는 그림자놀이를 뒤집어 감각의 불완전함을 일깨운다. 그림자들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박제된 동물을 사용한 작업이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한경우 씨는 그림자놀이를 뒤집어 감각의 불완전함을 일깨운다. 그림자들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박제된 동물을 사용한 작업이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2011년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한경우 씨는 그림자놀이를 또 한 번 뒤집는 발상으로 관객의 허를 찌른다. 스크린에 비친 토끼를 보는 순간 당연히 손으로 연출한 그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장막 뒤엔 박제된 토끼가 자리 잡고 있다. 소설 ‘어린 왕자’에서 꽉 막힌 어른들이 ‘모자’라고 답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미지도 등장하는데 뒤편으로 돌아가면 중절모가 놓여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3가지 차원이 전개된 설치작품 ‘I MIND’와 그림자 작업이 어우러져 인간의 감각과 고정 관념, 주입된 지식이 얼마나 쉽게 우리 자신을 속이고 본질을 가릴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12일까지. 02-3448-0100

두 전시는 그림자 이미지를 중심으로 보이는 것과 실재하는 것이 대립 혹은 공존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실재와 환영 사이를 오가는 작품들은 아는 것과 보는 것, 기억하는 것과 실재하는 것의 틈새를 깊숙이 파고든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뮌#기억극장#한경우#I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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