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好통]출판불황 맞서는 영국서점의 생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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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렬 문화부 기자
우정렬 문화부 기자
영국 런던 중심가 세실코트 골목길에 있는 골즈버러 서점. 7일 이곳을 찾았다가 낯선 풍경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책이 가득 꽂힌 책장마다 잠금장치가 채워진 유리창이 달려 있어서였다.

유리창 안 책들을 살펴보다가 의문이 풀렸다. 이 서점에서 취급하는 책은 모두 저자의 친필 사인이 적힌 초판 양장본. 권당 가격이 1000파운드(약 174만 원)인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초판본부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500파운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155파운드)에 이르기까지 저자 서명이 담긴 초판본이 책장에 가득했다.

서점 주인 데이비드 해들리 씨(40)는 “실제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은 적지만 책 목록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면 영국 프랑스 미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1만6000여 명에 달하는 회원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한다”고 했다. 그는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런던 중심가의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다 보니 책의 가치를 높일 방법을 고민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영국의 골목서점도 아마존 같은 온라인서점과 워터스톤스 같은 프랜차이즈 대형서점에 밀려 생존을 위협받기는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2005년 1535개였던 영국의 독립서점 개수는 지난해 987개까지 줄었다. 1000개 밑으로 줄어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코티나 버틀러 영국문화원 문학부장은 “영국 정부도 이를 심각히 받아들이고 독서 장려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10여 년 전 폐지한 도서정가제를 부활시키는 것 같은) 개별 서점의 가격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개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신 독립서점들이 인근 카페나 슈퍼마켓과 결합하거나 전문화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서점’에 대한 정의를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골즈버러 서점의 전략이 우리 골목서점의 위기를 해결해 줄 만병통치약이라거나, 입법 과정이 한창인 도서정가제가 문제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골목서점의 위기는 한국만이 아닌 전 지구적 현상이 됐다. 해외 골목서점이 생존을 위해 진화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지금, 우리 골목서점도 ‘서점’이란 이름만 빼 놓고 모두 바꿀 각오가 돼 있는지 한번 자문하는 계기로 삼아주길 바랄 뿐이다.―런던에서

우정렬 문화부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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