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믈로 전 국립 퐁피두센터 정보도서관장(왼쪽)과 김성도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교정에서 문화의 디지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문화의 온전한 디지털화는 가능한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음원으로 베토벤을 듣고 전자책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 세상 아닌가.
디지털의 편리함으로 문화가 더욱 활성화됐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만난 프랑스 석학 미셸 믈로 씨(71)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석사서, 국립 퐁피두센터 정보도서관장, 문화재청장 등을 지냈다.
“빌 게이츠 하면 디지털이 생각나죠. 재미난 점은 빌 게이츠가 엄청난 책 애호가라는 점이에요. 그는 다양한 장서를 보유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본 필사본까지 거액을 들여 소유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한국기호학회 창립 20주년 학술대회를 위해 방한한 그는 이날 김성도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장(51)과 함께 ‘디지털과 문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믈로 씨는 “디지털은 한계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디지털을 맹신한다”고 경고했다.
“책을 만져보세요. 촉각이 느껴지고 특유의 냄새도 납니다. 그런데 디지털화하면 책의 텍스트만 옮겨지죠. 책이 가지고 있는 물질성, 상징성, 즉 총체는 사라집니다. 본질적인 물질성, 즉 오브제는 디지털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는 또 “문화는 인간의 정신과 감수성을 축조하는 작업인데 디지털화하다 보면 상당 부분 소실되면서 문화가 축소된다”고 지적했다.
“‘학자의 관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내 도서관 정보화 실무를 맡다 보니 책, 나아가 문화의 디지털화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디지털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정리하고 삭제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기가 나가면 텅 빈 스크린만 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릅니다.”
믈로 씨는 디지털화로 발생하는 문화의 파편화, 획일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구글로 루브르 미술 작품을 찾아보세요. 정보가 매 순간 바뀌고 쪼개집니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보는 작품과 실제 박물관의 그림은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다릅니다. 제대로 본 게 아닙니다.”
그는 문화의 디지털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서적 발행과 도서관 수가 늘고 있는 ‘디지털의 역설’도 이야기했다.
“디지털이 세대와 세대를 넘어 문화를 전달할 수 있는가는 의문입니다. 디지털 정보는 끊임없이 생성되지만 끊임없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로 지금의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갈수록 안정된 매체를 원하다 보니 책도, 도서관도 더 많아지는 거죠.”
다만, 믈로 씨는 “디지털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며 “결국 인류는 아날로그 문화와 그 보존수단이 디지털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선’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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