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나무다리서 만난다…위안부 해법 양국의 선택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17시 25분


한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 16일 '군 위안부 문제' 협의

2년 가까이 서로 눈만 흘기던 한국과 일본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16일 서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을 안건으로 하는 국장급 협의가 처음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양국 대표는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과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다.

이 협의는 한일 모두에 중요하다. 안건 자체는 한국이 요구했고, 일본이 응한 형태를 취하긴 했으나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어떻게 진전되느냐에 따라 군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한일 관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 협의가 잘되리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번 협의의 앞길이 어두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하반기부터 그렇다보니 이제는 칼을 도로 집어넣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은 것이다. 시작도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얘기했듯 만났는데 결론이 좋지 않다면 만나지 않느니만 못한데, 그런 상황이 오면 한국은 더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22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참가자가 메시지 적힌 판을 들고 있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 1월 22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참가자가 메시지 적힌 판을 들고 있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일본의 입장은 어떤가. 일본이라고 나을 것도 없다. 이번 협의에서 '군 위안부 문제'만을 다루는데 일본은 반대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그런 일본이 이번 협의에 응한 것은 일단 한국의 입장을 들어보자는 소극적인 태도일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이번 협의에서 뭔가 진전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적다. 아베 총리는 우여곡절 끝에 군 위안부의 모집과 운영에 일본 정부의 직간접적인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 말이 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측근들이 고노 담화는 계승하되, 내용은 검증하겠다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양국은 왜 협상테이블에 앉았나. 미국의 압력이 거세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달 하순에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그전에 미국의 주요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대화분위기라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한일 양국이 미국의 이런 분위기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돌아가고 나면 어떻게 될까. 대화의 모멘텀도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모처럼의 대화 테이블을 그대로 접어버리는 건 아깝다. 양국은 인내심을 갖고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할 것이다. 이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차관급, 장관급 회담도 어렵고 정상회담은 더더욱 먼나라 얘기가 될 것이다. 이 문제의 진전 없이 안보와 북한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양국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협의에 임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번 협의에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어느 부분부터 풀어나가는 게 좋은지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는 게 우선이다. 장기전을 각오하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는 이 협의를 다른 사안과 연계하는 걸 자제해야 한다. 군 위안부 문제는 중요하긴 하지만, 문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의식적, 의도적으로라도 다른 문제와 분리해 한일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걸 막아야 한다.

셋째는 주변의 인내도 필요하다. 양국의 관계자나 언론 등도 즉각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고 비난하거나, 상대방만 비난하는 태도를 잠시 접고 조용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양국은 서로를 충분히 비난했다.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다면 양국 학자나 전문가 등으로 제3의 기구를 만들어 논의를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 대 정부의 만남은 기존의 입장을 바꾸기가 어려워 일의 진척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며 지난해 8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냈던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4월 11일 자신이 관여하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명의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안했다.

1. 양국 정부는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당국자, 위안부당사자 대표, 지원 단체,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협의체를 만들고 합의도출을 전제로 기간(양국의 국교정상화 50년이 되는 2015년 이전)을 정해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하여야 한다. 그 과정과 협의내용은 공개하여 양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2. 양국 지원 단체와 관련단체는 상대국이나 위안부에 대한 비방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한일 간 갈등이 되고 있으므로, 서로를 마주보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3. 양국의 언론은 국민들의 악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를 가급적 삼간다. 또한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는 기사를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 과정이 문제 해결뿐 아니라 악화된 양국민의 감정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상의 세 가지 제안은 군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흥분하기 마련인데 양국과 관계자가 모두 차분해져보자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恨-눈물로 핀 ‘지지 않는 꽃’… 진실은 꺾이지 않았다 2일 폐막된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지지 않는 꽃’에 나온 대표 출품작 김광성 정기영 작가의 ‘나비의 노래’를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이 작품은 16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 상처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할머니가 수요집회에 참가해 동료들과 일본의 사죄를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조직위원회 제공
恨-눈물로 핀 ‘지지 않는 꽃’… 진실은 꺾이지 않았다 2일 폐막된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지지 않는 꽃’에 나온 대표 출품작 김광성 정기영 작가의 ‘나비의 노래’를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이 작품은 16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 상처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할머니가 수요집회에 참가해 동료들과 일본의 사죄를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조직위원회 제공
이 단체는 또 4월 29일 오후 1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 심포지엄은 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1차적 책임자이고, 해결의 책임도 일본 쪽에 있는 게 물론이지만, 최근 20년간 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은 전혀 잘못이 없는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도 담을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즉 팽팽하게 대립해온 한일 양국과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나 해법에 매몰되지 않은 의견을 제시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을 ‘제3의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이는 고착된 현실을 어떻게든 타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고민 끝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주장을 심포지엄에서 공론화하려는 것은 군 위안부 문제가 부각된 최근 20년간 거의 없었으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한국언론문화포럼(회장 임철순)도 4월 18일 오후 3시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억을 넘어 미래로-일본군 위안부 해법을 모색한다'는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이 주제 발표를 한다. 여성정책의 책임자이자, 올 2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위안부 만화 전시회에 다녀온 조 장관의 해법이 궁금하다. 앙굴렘에서 전시됐던 위안부 만화는 3월 1일부터 4월 13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심포지엄과 세미나에서는 처음 열린 한일 국장급 협의에 대한 평가도 있을 것이고, 나름의 해법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드는 느낌이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초년 외교관 시절부터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국장을 끝으로 퇴임하기까지 20년 넘게 군 위안부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해 왔다.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양국 정부의 상반된 입장과 정책의 배경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자문한다. '실현가능한 차선'과 '실현 불가능한 최선' 사이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느냐고(3월 1일 허핑턴포스트 기고문).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유용할 것이다. 이 질문이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날이 와야만 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언제인지도 말하기 어렵지만.

심규선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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