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오바마와 함께 온다는 국새와 어보, 어떻게 다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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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 ‘정부 문서에 찍는 행정용 인장’
어보 ‘王 사후 종묘에 모시는 제의용’

한국 반환이 결정된 어보 ‘수강태황제보’(위 사진)와 국새 ‘황제지보’. 문화재청 제공
한국 반환이 결정된 어보 ‘수강태황제보’(위 사진)와 국새 ‘황제지보’. 문화재청 제공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미국에 있던 국새(國璽)와 어보(御寶)를 포함한 왕실인장 9과(顆)가 반환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 왕실인장을 부르는 용어가 여럿이라 혼동을 일으킨다.

일단 국새와 어보는 쓰임새가 다르다. 국새는 정부 문서에 찍는 행정용 인장이다. 왕위 계승을 포함한 공식 의전에도 쓰였고, 임금이 행차할 때 맨 앞 가마에 실어 위엄을 과시했다. 국새는 국내 인사 발령이나 공무 처리에 쓰는 신보(信寶)와 외교문서에 찍는 행보(行寶)로 나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서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는 “조선 후대로 가면 국새를 더 세분화해 사용했으나 실제로 크게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국새가 실무성이 강했다면, 어보는 상징성이 컸다. 혼례나 책봉 같은 왕실의식에서 시호나 존호를 올릴 때 제작됐는데 왕이 승하한 뒤 종묘(宗廟)에 모셔지는 제의용이었다. 왕은 물론이고 왕비와 세자,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다. 서 학예연구사는 “드물게 어보를 문서에 찍은 사례가 없진 않으나 원칙적으로는 보관용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어보는 총 360점이 제작돼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문정왕후의 금보를 포함해 현재 320여 점이 남아 있다. 국새는 40여 개 제작돼 현재는 10여 개만 남아있다.

어보와 국새를 통틀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건 보물 제1618호 황제어새(皇帝御璽·국립고궁박물관 소장)가 유일하다. 이 어새는 공식문서엔 등장하지 않는다. 학계에선 고종이 비밀 외교를 위한 친서에만 사용한 휴대용 국새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옥새(玉璽)와 어새(御璽)는 뭘까. 현대에 들어 옥새란 용어를 자주 쓰나 조선왕조실록엔 등장하지 않는다. 옥새는 중국 진시황이 처음 옥으로 제작한 뒤 황제의 인장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 제후국이었던 조선은 금으로 제작한 금보(金寶)를 썼고, 옥으로 제작한 국새에도 옥새란 표현을 피했다. 어새는 어보와 국새를 통칭할 때 쓴다.

이번에 반환되는 왕실인장에서 어보는 1907년 고종에게 바쳐진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1과다. ‘황제지보(皇帝之寶)’와 관리 임명장에 사용한 ‘유서지보(諭書之寶)’, 춘방(春坊·왕세자 교육 관청) 관원 교지에 쓴 ‘준명지보(濬明之寶)’ 3과가 국새에 해당한다. 황제국을 천명한 대한제국 수립 이후 옥으로 제작한 국새인 황제지보는 옥새다. 나머지 5과는 왕이 서화를 감상하거나 시를 지을 때 쓰던 사인(私印)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어보#수강태황제보#국새#황제지보#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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