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셰익스피어 한글 번역은 원전의 내용 파악에 중점을 두고 그 뜻을 풀어주는 ‘산문 번역’이었어요. 산문 번역은 독자의 이해 편의성은 높지만, 셰익스피어 문장 특유의 시적 리듬과 음악성 전달에 한계가 많았지요. 이제 우리도 음악성까지 살린 셰익스피어 번역 전집을 가질 때가 됐습니다.”
최근 ‘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한 희극 5편과 ‘헨리 4세’ 등 사극 및 로맨스 3편을 번역한 2권의 책을 내놓으며 운문체 셰익스피어 전집(전 10권·민음사) 발간에 들어간 최종철 연세대 교수(65·영문학). 그는 셰익스피어라는 한우물만 판 영문학자다. “군 제대 후 복학해 전공 강의에서 햄릿을 읽은 게 인연이 됐죠. 석박사 학위 모두 셰익스피어 연구로 받았죠. 이후에도 셰익스피어 연구와 번역만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정년(8월)이 됐네요.”
최 교수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의 가장 큰 차별성은 국내 첫 ‘운문 완역’이라는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한시의 5음보를 닮은 ‘5보(五步)격 운문’으로 돼 있습니다. 희곡의 경우엔 최대 80%나 됩니다. 다섯 걸음을 걷는 시간에 압축, 절제된 문장이 배치된 리듬감 넘치는 운문이지요. 저는 이런 원작의 리듬감을 우리 전통시의 운율인 3·4조나 4·4조로 풀어냈습니다.”
그는 1993년 희곡 ‘맥베스’로 국내에서 첫 셰익스피어 운문 번역을 시작했다. “시행착오가 많았죠. 리듬감도 살리고 싶고 의미 전달도 포기할 수 없어서 원작의 한 행을 두 행, 세 행으로 번역할 때가 많았죠. 이를 토대로 공연하면 공연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도 있었고요. 이번 전집 번역에서는 원작의 한 행을 가급적 한 행으로 옮기는 원칙을 지키려 했습니다.”
전집 발간을 위한 번역 과정은 셰익스피어가 느꼈을 창작의 고충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셰익스피어도 5음보 운문이란 형식 안에 평이한 영어 단어와 함축적인 라틴어 단어의 결합에 고심했을 겁니다. 저 역시 의미 전달과 리듬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고 순우리말과 한자어 조합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그는 5년 뒤인 2019년까지 완간을 마치겠다고 했다. “퇴임 후에는 번역에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번역서에 대한 평가에 인색해 강단에 있는 동안 번역에 공력을 쏟기가 쉽지 않아요. 한 문화를 다른 문화와 연결지어주는 의미 있는 작업인 번역에 대한 지원과 격려가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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