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관, 이름 참 딱 들어맞는다. “잠깐 쉬었다 가자. 오빠 못 믿어?” 하는 끈적이는 멘트와도 잘 어울리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유쾌함을 만나니 기분 전환과 에너지 충전 효과도 그만이다. 잠깐 쉬어도 하룻밤 푹 잔 듯 원기 충전되는 장미여관에서의 유쾌한 투숙.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미여관의 다섯 남자들은 인생도, 음악도 변두리를 맴돌고 있었다. 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는 서울살이 서글퍼도 한 방 성공의 헛된 꿈 한번 꾼 적 없이 하루하루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이들이었다. 살던 지하 방 한쪽에 마련한 작은 녹음실에 큰 덩치 구겨 넣어 쪼그려 앉은 채 ‘봉숙이’를 부르던 다섯 남자는 순식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밴드 중 하나가 됐다. 2012년 KBS2 밴드 서바이벌 ‘톱 밴드2’에서 ‘봉숙이’를 부르던 순간부터, 이들의 첫등장은 범상치 않았다. ‘아까는 집에 안 간다고 데킬라 시키돌라케서 시키놨드만 집에 간단 말이고. 못 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라는 울부짖음에 보사노바풍의 고급스런 멜로디를 얹어 능청스러운 웃음을 흘리던 모습은 파격적이었으며 신선했다. 비록 장미여관이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톱 밴드2’는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린 공중파 데뷔 무대가 됐다. 이렇게 음악적 승부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면 예능적 승부수는 지난해 가을 뜻밖의 ‘무한도전’ 출연으로 확실한 검증을 받았다. 상도 없이 방바닥에서 게 다리를 뜯는 남자. 누렇게 변색돼 일명 고름 베개라 일컬어지는 베개 껴안고 긴긴 밤 잠 못 드는 남자. 늘어진 티셔츠, 빨지 않은 반바지를 입었지만 무대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렬한 불꽃을 터트리는 그들의 모습에 충분히 비호감이 될 법한 요소들까지 매력 포인트로 승화됐다. 서툰 살림 솜씨와 고름 베개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산 만한 덩치를 하고 철부지 같은 웃음을 짓는 건 세상 때 묻지 않은 순박함으로 다가왔다. 더티한 것은 분명하고, 섹시하려 하지만 그저 유쾌하고 기분 좋은 사람들, 바로 장미여관이다. 지하 방에 햇볕 들던 날
“결혼 안 하셨죠?”(강준우) “또 그런다.”(임경섭) “어딜 봐서 결혼한 얼굴이야?”(배상재) “와~ 오늘도 한 건 했다.”(강준우) “쟤는 우리 엄마한테도 그러더니.”(육중완) “방금 멘트 좋아.”(윤장현) 다섯 남자가 한꺼번에 입을 여는 통에 시작부터 시끌벅적하다. 웃자고 덤비니까 맞장구치며 한참을 웃다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뽀뽀 효과’ 같은 건가? 다 큰 성인 남성의 비위에 맞지 않을 ‘뽀뽀’가 장미여관의 환상적 팀워크의 비결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질색할 일이지만 정작 해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어느새 멤버들 사이에 돈독하다 못해 끈적이는 우정이 피어난다나 뭐라나. 최근 MBC ‘나 혼자 산다’ 무지개 회원이 된 기타·보컬 육중완과 장미여관의 맏형 베이스 윤장현, 별명인 부엉이로 더 유명한 기타·보컬·밴드 마스터 강준우, 진지한 마스크에 반전 매력을 가진 기타 치는 배상재와 유일한 유부남 멤버인 드럼의 임경섭까지 딱 ‘초딩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가벼운 말장난을 주고받는다. 평균 나이 36.8세. 음악 인생도 평균 20년을 훌쩍 넘는 남자들이 웃자고 하는 이야기 속에서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감대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생애 첫 전국 투어를 열어 전국 2만 관객 기록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MBC every1에서 ‘장미 테레비’의 호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장미여관에게는 나이를 잊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방송 출연 전후로 가장 달라진 변화를 꼽자면, 우선 살이 너무 많이 쪘고요(웃음).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차에 타서 지방 공연장까지 가고, 무대가 끝나면 밥 먹고 또 차에 타는 생활이 반복되니까 살이 많이 쪘어요.”(윤장현) ‘살’이야기가 나오니, 나는 쪘네 안 쪘네 하며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진다. 밴드 결성 4년, 무명 생활 20년 만에 거둔 성공. 주변 반응은 어떨까? “무엇보다 엄마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서 그게 좋죠. 그 전까지 음악 한다고 걱정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많이 편안해졌어요.”(배상재) 소재만 던져주면 와글와글 시끄러워진다. 부모님이 노인정에서 MC를 맡는다는 이야기나 졸업 30년 만에 동창생에게 전화를 받았던 이야기, 여자친구들(임경섭은 이미 결혼을 했고, 다른 멤버들 모두 여자친구가 있다고 고백했다)이 처음에는 좋아하더니 이제는 무감각해졌다는 이야기, 여자친구가 최근에서야 자신의 남자친구가 장미여관 멤버라는 걸 회사 동료에게 밝혔다는 이야기 등을 놓고 즐거운 대화가 오간다. 변화의 대부분이 즐거운 일이지만 가장 행복한 변화 중 하나가 무대에서 만나는 객석의 반응이다. “작년 여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갔을 때, 쭉 둘러보니까 관객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 원래 없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튜닝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 언덕에서부터 벌떼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오는 거예요. ‘설마 우리 공연 보려고 오는 건가?’ 싶었는데 금세 5천 석이 꽉 차더라고요. 아, 그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육중완) “무대에 섰을 때 저희 노래를 아는 분들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노래도 따라 하고 환호해주니까, 또 전국 투어를 하면서 저희만 보러오는 관객들이 계시다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거죠.”(임경섭) 장미여관 이전의 길고 긴 무명의 삶. 알아주는 이 없어서 팍팍했을지언정 돈이 없다는 게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돈이 없으면 어떻노. 힘들지만 기타 레슨 열심히 하고, 돈 모으면 기타 하나 사고, 또 돈 없으면 샀던 기타 내다 팔고. 저희만 유독 힘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더 힘든 분들도 여전히 많고요. 그래도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음악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거든요. 좋아하는 거 하면서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돈 벌면 그만인 거죠.”(강준우) “곡은 쌓여가는데 돈이 없으니까 앨범을 낼 수 없는 몇 년을 지냈어요. 통장에는 늘 잔고가 10만원. 지금 옥탑방에 사는데, 그건 호사스러운 거예요. 반지하도 아닌 지하 방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들이친 거예요. 급하게 짐을 옮기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마치 이제 음악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계시 같았죠. 그때 담배 몇 대를 피우면서 오만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뒤 트럭을 불러서 홍대로 왔고 준우를 만났죠.”(육중완) “돈보다 사회적 시선이 힘들죠. ‘너는 그 나이 먹어서 계속 음악만 하니?’ 하는 그런 것들.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그런 질문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정작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을 들으면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거든요. 한번은 제 주변의 상황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는데, 공연 한번 하고 나면 힘이 나고 그 힘으로 살아가게 되더라고요.”(배상재) 굳이 물으니 답할 뿐, 그 무명의 설움을 훈장처럼 여기지도 않으며 이제야 빛을 봄에 감격에 젖지도 않는다. 멤버 대부분이 고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접했고, 밴드 활동을 했으며, 음악과 사랑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이후에는 음악을 해서 힘든 것보다 음악을 하기에 얻는 행복이 더 컸다. 밤무대 세션으로 일해도 이 시기만 넘어가자, 조금만 더 참아보자, 못 참아서 잠시 딴 길에 한눈팔아도 블랙홀처럼 빨려든 길이 다시 음악이고, 그래서 지금의 장미여관이 됐다. “장미여관이 결성된 건 2010년이에요. 그 전에 각자의 음악 활동 기간이 길었죠. 각자 밴드를 결성했다가 찢어진 경험들도 숱해요. 그러다 보니 멤버들끼리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또 어떤 걸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게 서로를 위하는 일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죠. 또 장미여관을 만들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성과를 기대했던 멤버도 없었을 거예요. 밴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던, 그저 막연히 ‘잘될거야’ 하는 그 마음의 연장선상이었을 뿐이죠.”(윤장현) 코믹, 더티, 섹시한 다 큰 남자 이야기
처음 강준우와 육중완이 결성한 2인조 밴드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나 ‘유리상자’의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처참히 그들의 꿈을 외면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을 때, 알고 지내던 형들이 하나 둘 힘을 보태 만들어진 게 지금의 5인조 ‘장미여관’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 같은 코믹, 더티, 섹시 콘셉트로 밀고 나간 것은 아니었다. 첫 공연 때 가장 멋진 옷을 입었지만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관객의 시선도 집중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렌지색 정장을 입고 손바닥만 한 장미 코르사주를 가슴에 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때가 코믹의 시작이었다. “멤버 모두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믹한 모습도 꺼려하지 않았어요. 뭔가 일하면서 재미있는 걸 하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처음 저희도 음악이 재미있어서 시작했으니까, 살아가는 것도 뭔가 재미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게 없을 것 같아요.”(육중완) 그래서 자신의 작업실 겸 자취방의 문을 방송 카메라에 쉽게 열어줄 수 있었을까. 지난해 ‘무한도전’에서 철저히 까발려지고, 이제는 ‘나 혼자 산다’의 무한한 소재거리가 되고 있는 궁상의 초절정 옥탑방은 그들이 갖는 ‘더티’ 이미지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억지로 꾸미고 만들어도 봤는데, 그건 결국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편안하게 하자, 사실 그렇게 시작했으니까. 씻기 귀찮고, 귀찮음의 절정판이 그냥 나온 거예요.”(육중완) “사실은 더티, 섹시라는 말은 저희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기자분들이 붙여주신 말이거든요. 중완이는 머리가 빠지고 있어서 이런 헤어스타일이 어쩔 수 없는 거였고. 많은 분들이 그런 저희 모습을 좋아해주시니까 계속 그 이미지를 갖게 된 거죠.”(윤장현) 방송에서는 육중완의 옥탑방만 공개됐지만 혼자 사는 윤장현과 강준우의 생활도 궁금했다. “가장 더러운 게 중완이고, 다음이 준우, 그다음이 장현이 형”이라고 임경섭이 순위를 정한다. 또 한바탕 아니네, 맞네 하며 아웅다웅한다. “자취하는 남자들 사는 모습이 비슷하죠. 그런데 더러운 거랑 안 치운 거랑은 확실히 구분해야 돼요. 중완이는 더러운 거, 저는 어지른 걸 안 치운 것. 스타일이 달라~.”(강준우) 어찌 됐건 육중완의 옥탑방이 장미여관에게 깊은 인연의 장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옥탑방을 벗어날 형편이 됐음에도 그곳을 떠나도 되나 싶을 만큼. “방송에서 공개된 후로 옥탑방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꽤 계세요. 맨 정신으로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고요. 밤늦게, 혹은 새벽에 술을 드시고 찾아오시죠. 보통은 1, 2분 정도 문을 두드리다가 안 나오면 그냥 가시는데, 한번은 10분이 넘도록 문을 두드리더라고요. 화가 나서 문을 벌컥 열었는데,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우리 딸이 팬이다. 사인 한 장 해달라’고 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근데 문제예요. 주위에서 시끄럽다고들 하시니까. 아직 계약 기간이 1년 조금 넘게 남아서, 계약 기간 끝나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육중완) 처음 그들의 꿈은 라디오에서 자신들의 노래가 나오는 것이었다고 했다. 다음에는 TV 프로그램이 끝날 때 잠깐 틀어주는 뮤직비디오로 방송됐으면 했고 공중파에서 노래를 하고 싶었고, 그다음에는 전국 콘서트를 꿈꿨다. 하나하나의 꿈을 꾸고, 또 하나하나의 꿈을 이뤄왔다. 많은 것을 이룬 지금, 불안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아요. 이제 저희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지금 잃어도 남는 장사예요. 망해도, 그대로라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가진 것 없이 시작해서, 지금도 잃을 건 없어요.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임경섭) 이제는 다른 꿈을 꾼다. 해외에 진출하고, 앨범이 1백만 장씩 팔려나가고, 국민 가요 하나쯤 부르고 싶다. 너무 부푼 꿈일까? 장미여관 이전의 그들에겐 지금의 모습 또한 꿈꿔보지도 못했던 것이었기에, 지금의 꿈 또한 이뤄질지도 모를 일이다.
글·진혜린 | 사진·지호영 기자 | 헤어·김혜미(위드뷰티살롱) | 메이크업·황정은(위드뷰티살롱)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