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1일 일요일 흐리고 비.
거미, 인간. #107 Alicia Keys feat.
Kendrick Lamar ‘It's On Again’(2014년).
비틀스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조지 마틴(88)의 삶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 ‘프로듀스트 바이 조지 마틴’(2012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그가 비틀스와의 교감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숱이 적은 백발 아래 쭈글쭈글한 얼굴의 마틴이 “운이 좋아야 늙을 수 있다”면서 웃는, 스치듯 흘러간 한 컷이었다. 그보다 열댓 살 정도는 어린 비틀스의 멤버 중 아직 살아있는 이는 둘뿐이다.
정말 ‘운 좋은 사람’이 하나 있다. 늙지도 않는다. 스파이더맨이다. 최근 본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무게감이 확 줄어 맥이 좀 빠졌다. 전편이 그리워졌다. 원래 스파이더맨은 극중 악당들 못잖은 고민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평범한 거미인간 아니었나.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가 처음 거미 가면을 쓴 이유는 단 한 가지, 삼촌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가면의 기능은 본디 악당의 복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파이더맨은 미국 뉴욕 윌리엄스버그 다리에서 난간 아래 매달린 꼬마의 목숨을 우연찮게 구하면서 공적 책임에 눈을 뜬다. ‘전 스파이더맨입니다’란 대사를 처음 뱉는 이 장면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인 것이다. 경찰서장인 여자친구 아빠와 파커의 설전도 의미심장했다. 거미인간의 활극은 재난이란 거울이 투영한 일그러진 상을 마주한 요즘 우리 사회를 떠오르게 했다. ‘재난 앞에 급한 것은 무엇인가’ ‘민간과 공공은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무능과 무신경이 결합된 컨트롤타워는 높고 공허한 탑인가’ 같은 질문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좀 구겨진 체면은 전편의 제임스 호너 대신 한스 치머가 총괄 지휘한 박진감 있는 영화음악이 살렸다. 지난해 슈퍼맨을 다룬 ‘맨 오브 스틸’ 음악에 스타 드럼 연주자 군단을 투입했던 치머가 이번엔 조니 마(스미스), 퍼렐 윌리엄스, 정키 XL 같은 다분야 베테랑으로 또 한 번 드림팀을 꾸렸다.
전기인간처럼 저돌적인 켄드릭 라마의 랩이 담백하게 노래하는 얼리샤 키스의 보컬과 대비되는 주제곡 ‘이츠 온 어게인’의 “내가 말할 수 있는 건/세상은 멈추지 않고/또 시작이라는 것”이라는 노래는 고단한 거미인간의 독백 같다.
10, 11일 수십 개의 인디음악팀이 서울 홍익대 주변 거리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이란 공연에 산발적으로, 자발적으로 나섰다. 축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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