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출판사 대표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출판계를 ‘뿔나게’ 한 것은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기분 좋은 날’. 지난달 27일 방영분에는 출판인들이 입 밖에도 내길 싫어하는 ‘도서 사재기’가 소재로 쓰였다.
극중 작가인 송정(김미숙)은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 크게 기뻐하며 인세를 달라고 출판사에 요구한다. 그러자 출판사 대표는 송정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간다. 그곳에는 송정의 책이 쌓여 있었다. 출판사 대표는 말한다. “아직도 모르겠어? 베스트셀러 내가 만들었어!”
지난해 5월 소설 ‘여울물 소리’의 사재기 논란이 제기되면서 저자 황석영 씨가 책의 절판에 이어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는 등 출판계 일각의 사재기가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면 ‘사재기 한 것이 아니냐’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제 출판인들은 사재기란 말만 나와도 질색할 정도다. 그런 차에 파급력이 큰 드라마에서 ‘베스트셀러가 사재기로 이뤄졌다’는 내용이 나오다니….
발끈할 만했다. 한 출판계 인사는 “사재기 탓에 출판인들은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고 했다.
출판담당인 기자 역시 안타깝다. 국내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2004년 11권에서 2013년 9.2권으로 줄었다. 지난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3명일 정도로 ‘읽지 않는’ 풍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사재기 의혹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더욱 읽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슈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던 30, 40대 독자층마저 베스트셀러를 믿지 못해 책 구매를 꺼린다는 출판계의 진단도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결국 사재기 문제는 출판계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다. 사재기가 드라마 소재로 쓰이게 된 원인은 결국 출판사 탓이다. 최근에는 불법 유출 개인정보를 사들여 무작위로 책을 발송하는 신종 사재기 수법 소문도 들리고 있다.
책 만들기를 천직으로 살아온 출판인들은 드라마 내용이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불만 표출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정 노력을 계속할 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