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이 내기를 했습니다. 더 예쁘게 노래하는 쪽이 이기는 걸로요. 누가 심판을 맡을까요? 뻐꾸기는 당나귀에게 선택을 맡기자고 했고 나이팅게일도 동의했습니다. 이유는… 당나귀는 귀가 크니까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나요.
둘의 노래를 들은 당나귀는 말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어려워. 뻐꾸기는 화음도 좋고 박자도 좋아. 그러니, 내 높은 지성으로 말한다. 뻐꾸기가 이겼다!”
말러의 가곡집 ‘아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나오는 가곡 ‘높은 지성에의 찬미’입니다. 독일 민요를 가사로 차용하고 있지만 이 노래에는 ‘비평가’들을 보는 작곡가들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곡가들이 보기에 비평가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시하고, 박자가 맞다 틀리다, 음정이 맞다 같은 ‘말로 표현하기 좋은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는 베크메서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노래경연대회의 심사위원장이자 비평가인데, 이 사람은 ‘틀리면 감점’이 모토입니다. 자유롭게 개인의 예술을 펼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바그너는 자신이 혐오하던 음악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사진)의 모습을 베크메서에 투영했다고 합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초고에는 아예 베크메서라는 이름 대신 ‘한슬리크’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죠.
왜 작곡가들이 비평가들을 싫어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죠? 작품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들추는 데 열심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유가 뭘까요. 오늘날 발표되는 창작곡에 대해서는 고전 낭만시대처럼 열심히 단점을 들추는 비평가를 보기 힘듭니다. 콘서트나 음반에 대해서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따가운 비판도 쏟아지는데 말이죠. 하지만 작곡가들이 맹렬한 비판도 감수해야 했던 시절에 비해 오늘날의 창작음악이 청중들과 더 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말러 교향곡 5번 C샤프단조를 연주합니다. 이 곡의 5악장에는 말러가 비평가들에 대한 씁쓸한 기분을 담았던 가곡 ‘높은 지성에의 찬미’ 선율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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