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힐링투어]자비에르 신부 자취 가득한 나가사키 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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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천주교 박해 현장 고스란히… 운젠 온천서 마음 달랜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히라도 성에서 바라다본 자비에르 기념성당. 첨탑 아래로 불교사찰 두 개가 보이는데 이곳이 ‘사찰과 성당이 보이는 풍경’의 현장이다. 나가사키=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언덕 위에 자리잡은 히라도 성에서 바라다본 자비에르 기념성당. 첨탑 아래로 불교사찰 두 개가 보이는데 이곳이 ‘사찰과 성당이 보이는 풍경’의 현장이다. 나가사키=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아무리 불러도 흐르는 건 침묵뿐. 바다도 하늘도 신도 대답을 주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 어째서 이 어린 학생에게, 하필이면 내 자식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는 끝없는 질문에…. 진도 바다에서 속절없이 스러져간 자식과 가족을 바라보며 팽목항 부두에서 오열하던 이들의 절망감이 가슴을 저민다.

그 절망감. 17세기 일본 천주교신자도 같지 않았을까 싶다. 근 3세기에 걸쳐 가혹한 박해를 받아서다. 부모 앞에서 어린자식이 펄펄 끓는 온천구덩이에 집어던져지고, 생사람 몸에 지핀 불로 사랑하는 이가 타 죽었다. 그랬지만 그때도 하늘은 침묵했다.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렸건만 어떤 대답도 얻지 않았다. 침묵, 침묵, 그리고 또 침묵뿐이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배교(背敎)를 거부했다. 천주교 신자를 가려내기 위해 성모마리아나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나무판을 밟도록 했다. 그 그림을 후미에(踏み繪)라고 한다. 밟으면 혹독한 고통과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밟은 이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거부한 이도 많았다. 화형장에서 스스로 화목(火木)을 자기 머리에 올리고는 그 나무에 축복을 청한 신자도 있었다. 한 12세 소년은 ‘제 십자가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며 십자가형을 영광스레 여겨 처형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시마바라(島原·나가사키 현)에서는 죽음도 개의치 않고 집단봉기 해 관군과 맞서 싸우다 몰살됐다. 그 수는 3만7000명을 헤아렸다.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1923∼1996)에게도 그 침묵은 극복되지 않은 물음이었다. 그래서 그 역시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종내 스스로 답을 찾았다. 소설 ‘침묵’이 그것이다. 그가 배교한 외국인 선교사(예수회신부)를 통해 얻은 답.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였다. 이유는 이러했다.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올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는다. 그리고 박해 중에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복자’(福者·교황청이 죽은 이의 덕행과 신앙이 공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판단해 공식적으로 지정해 발표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로 시복한다. 나는 이걸 계기로 281년간(1592∼1873) 혹독했던 박해의 현장이자 ‘일본의 로마’라 불리는 규슈의 나가사키 현을 다녀왔다. 일본에 최초로 천주교를 전래한 프란시스 자비에르 신부(1506∼1552) 기념성당이 있는 히라도(平戶)와 시마바라 반도, 운젠(雲仙) 온천을 소개한다.

교황 방한 계기, 일본 천주교 성지를 가다


1550년 예수회의 자비에르 신부가 일본 최초로 천주교를 전파한 것을 기념해 그 현장인 히라도 섬에 1931년 바로크 풍으로 건축한 자비에르 기념성당 내부(위)와 외부(가운데). 아래는 예수회가 1864년에 지어 26위의 일본천주교 순교성인에게 봉헌한 오우라천주당.
1550년 예수회의 자비에르 신부가 일본 최초로 천주교를 전파한 것을 기념해 그 현장인 히라도 섬에 1931년 바로크 풍으로 건축한 자비에르 기념성당 내부(위)와 외부(가운데). 아래는 예수회가 1864년에 지어 26위의 일본천주교 순교성인에게 봉헌한 오우라천주당.
요즘 일본에서 나는 버스여행을 즐겨한다. 여행이란 게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동과정까지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다. 늘 기대를 웃도는 소득을 얻는다. 이번 취재 중 나가사키 현도 후쿠오카 시내(톈진버스센터)에서 특급버스를 이용했다. 첫 장소는 100km 떨어진 사세보. ‘구주구시마(九十九島·점점이 뜬 섬 풍경이 아름다운 바다)’ 관광선 출항지로 남국의 풍정이 짙은 항구도시다.

버스센터 건너편은 사세보 역. 거기엔 이곳 명물 ‘사세보 버거’를 파는 ‘로그키트’(www.logkit.jp)가 있다. 그걸로 점심을 때운 뒤 히라도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1550년 자비에르 신부가 첫 선교지로 찾은 곳이다. 히라도는 섬이긴 해도 현수교(히라도대교)로 육지와 연결됐다. 자비에르 신부가 찾았을 당시 히라도는 국제무역항이었다. 포르투갈 상선을 필두로 네덜란드와 영국 배가 이곳에 집결했다. 빵 담배 맥주 등 서양문물이 최초로 일본에 흘러든 창구 역시 여기 히라도다.

자비에르 신부와 히라도


두 시간의 버스여행 끝에 도착한 히라도 항. 봄볕 아래 졸음 겨운 봄꽃마냥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자그만 항구는 산책로까지 갖춘 수변공원으로 꾸며졌는데 그걸 구릉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 구릉 위로 히라도 성이 바다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자비에르 기념성당’(1937년 축조)은 내륙 쪽 구릉 위에 있다. 성당을 찾아 항구 배후의 고풍스러운 거리로 들어섰다. 조금 걷자 길 안내판이 보인다. ‘사찰과 성당이 보이는 풍경’이라고 씌어 있다. 주택가로 들어서자 이름 그대로 ‘풍경’이 펼쳐졌다. 언덕의 중턱쯤에 위아래로 자리 잡은 두 불교사찰 뒤로 기념성당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옆길(계단 경사로)로 오르면 성당에 닿는데 그 길도 이름 못지않게 아름답다.

성당의 외관은 우아하고 또 화사하다. 장식이 많은 바로크양식에 파스텔 색조 덕분이다. 신자 출입문 옆에 십자가를 든 신부상이 보인다. 자비에르 신부다. 그 뒤는 순교자 현양 기념탑. 실내는 더 이국적이었다. 규모는 명동성당의 3분의 1쯤. 특이한 천장이 눈길을 끄는데 19세기 일본성당 건축에 풍미했던 박쥐날개 형태다. 양면 벽의 창문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다.

호텔에서 짐을 푼 나는 자전거로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언덕 꼭대기의 히라도 성부터 올랐다. 주변 바다와 히라도 대교는 물론이고 항구와 마을이 두루 눈에 들어왔다. 성당도 잘 보였다. 히라도는 작지만 매력적인 항구마을이다. 밤이 되자 항구는 멋지게 변신했다. 곳곳에 설치한 조명 덕분이다. 수변공원엔 나무 덱으로 만든 산책로가 있다. 그 길 끝엔 400여 년 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식으로 건축한 순백의 네덜란드 상관(商館)이 있다. 일본 서양건축물 중 최고(最古)다. 예약한 숙소는 상관 부근 바닷가의 가이요(海上). 객실은 물론 로텐부로(노천탕)가 바다와 히라도 성이 바라다보이는 전망 좋은 해수온천 료칸이다.

일본의 로마, 나가사키

나가사키 역에서 육교를 건너면 왼편 언덕으로 공원 표지판이 보인다. 니시자카 공원이다. 일본 최초로 천주교인 26명이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한 곳이다. 때는 1592년 1월 말. 교토를 떠난 후 33일간 630km를 걸어 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죽음뿐이었다.

거기 오르니 벚꽃에 둘러싸인 가운데 기념비와 기념관, 기념성당이 있다. 기념비는 26성인을 나타낸 부조. 그 모습에 코끝이 찡하다. 모두 두 발이 공중에 떠있다. 승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중 오른편에서 아홉 번째가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찾던 열두 살 소년 두로비코 이바라기 성인이다. 이들이 시성된 건 1862년 교황 비오 9세 때다. 26성인 기념관은 기념비 뒤편. 신자를 찾아내기 위해 발로 밟게 했던 후미에, 관헌에 들킬까봐 예수상 대용으로 쓰던 백제 미륵보살상 등 다양한 박해유물이 전시돼 있다.

나가사키 시내에서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글로버 가든(Glover Garden)이다. 19세기말 개화기의 이곳 서양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오우라 천주당(성당의 일본식 표기)’도 거기 있다. 당시 ‘프랑스 절’로 불렸던 곳인데 1864년 나가사키 개항을 계기로 외국인선교사의 활동이 허락되자 예수회가 지어 성인 26위에 봉헌했다. 그런데 이듬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인근(우라카미 지역)의 가쿠레 기리시탄(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천주교인) 10여 명이 찾아와 신자임을 고백하며 성모 마리아상을 찾은 것. 신부도 없이 250년이나 신앙을 유지한 예는 가톨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교황청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에도막부에 박해재개의 빌미를 주게 되고 우라카미 주민은 모두 추방됐다. 일본의 천주교박해는 1873년에 가서야 종식된다.

운젠 온천과 시마바라
반도

위부터 히라도 항과 마을이 주변 바다와 더불어 한눈에 조망되는 바닷가 높은 언덕의 히라도 성. 지열지대의 지면을 뚫고 피어 오른 고온의 온천 수증기로 뒤덮인 운젠 온천의 운젠지고쿠 입구. 운젠 온천에 도착한 독특한 모습의 나가사키 현 직영버스. 정면 오른편에 ‘산큐패스’ 스티커가 붙어있다.
위부터 히라도 항과 마을이 주변 바다와 더불어 한눈에 조망되는 바닷가 높은 언덕의 히라도 성. 지열지대의 지면을 뚫고 피어 오른 고온의 온천 수증기로 뒤덮인 운젠 온천의 운젠지고쿠 입구. 운젠 온천에 도착한 독특한 모습의 나가사키 현 직영버스. 정면 오른편에 ‘산큐패스’ 스티커가 붙어있다.
나가사키를 떠난 특급버스가 바다를 등지고 운젠다케의 산악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분 후 한 마을에 도착했다. 운젠 온천이다. 이곳은 해발 660m의 산중턱. 버스를 내린 시마테쓰(지역버스회사) 운젠버스 센터 건너편으로 작은 신사가 보이는데 거기가 운젠지고쿠(地獄) 초입이다. 일본온천에서 ‘지고쿠’라 하면 온천수와 수증기가 지면에 노출된 지열지대를 말한다. 지고쿠는 홋카이도(노보리베쓰)와 오이타 현(벳푸)에도 있지만 규모와 풍광에서 운젠을 따르진 못한다.

운젠 온천은 이 운젠지고쿠 산책로를 걸으며 기이한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매력. 지고쿠에 들어서자 잿빛의 뜨거운 지면을 얼키설키 뒤덮은 파이프라인부터 보인다. 료칸에 온천수를 공급하는 관이다. 이곳 용출 온천수는 섭씨 90도에 강산성(PH2∼2.2)인데 성분은 주로 황. 마을은 지열지대에서 쉼 없이 피어오르는 수증기로 특별한 풍광을 자아내는데 가끔은 도로까지 수증기에 뒤덮이기도 한다.

반도를 뒤덮은 산 운젠다케는 1990년까지만 해도 최고봉이 후겐다케(普賢岳·1359m)였다. 그런데 지금은 쇼와신잔(平成新山·1483m)이다. 1991년 시작된 분화결과다. 쇼와신잔은 새로 용출된 용암이 만든 봉우리다. 43명이 희생된 1991년 6월의 화산폭발은 199년 만의 분화. 그때 한 마을(미나미 시마바라 시)이 흘러내린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였다. 대부분 집이 처마까지 용암에 매몰됐는데 그중 일부는 공원으로 지정돼 공개 중이다.

■Travel Info

버스 여행:니시테쓰(서철)가 규슈 7개 현과 시모노세키의 모든 운수회사와 공동 개발해 어디서든 통용되는 ‘산큐패스(SunQ Pass)’를 이용하면 저렴하고 편리하다. 종류는 세 개.

히라도:나가사키 현의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연륙도. ‘대항해시대의 성읍도시’라 불릴 만큼 16∼18세기 서양문물 유입기에 창구를 담당했던 섬이다. 맥주 페인트 서양의학 담배 고구마 선종(불교)과 차(茶)재배가 모두 여기서 시작됐다. 그 중심은 유럽선박이 드나들던 히라도 항. 규슈올레 코스(13km)도 있다. www.city.hirado.nagasaki.jp/

시마바라 반도: 일본 최초 ‘운젠아마쿠사(雲仙天草)국립공원’이자 세계지질공원(www.unzen-geopark.jp). 시마바라(www.shimabaraonsen.com), 미나미 시마바라(ohttp://himawari-kankou.jp), 운젠 시(www.unzen.org www.unzen-kankou.com)로 구성. 오바마 초는 www.obama.or.jp ◇시마바라 성:시마바라 시내. www.shimabarajou.com ◇운젠 온천 ▽묘켄다케(妙見岳·1333m)전망대(해발 1300m):쇼와신잔 등 후겐다케의 분화 후 모습과 더불어 시마바라 반도와 주변 바다(아리아케) 및 바다 너머 구마모토 현을 한눈에 조망. 니타(仁田)고개(1100m)에서 운젠 로프웨이(케이블카)로 오른다. △운젠 온천∼니타고개: 지역버스가 하루 세 번 운행(20분 소요·왕복 860엔). ▽료칸 △후키야(富貴屋):운젠지고쿠의 풍경을 로비와 객실에서 조망할 수 있는 최고급 료칸. www.unzen-fukiya.com ▽버스운행 △후쿠오카∼시마바라: 하루 3회 ▽나가사키행:100분 소요. 시마바라 첫 편은 오전 9시 출발
언덕 위에 자리잡은 히라도 성에서 바라다본 자비에르 기념성당. 첨탑 아래로 불교사찰 두 개가 보이는데 이곳이 ‘사찰과 성당이 보이는 풍경’의 현장이다.

나가사키=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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