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장의 40%를 차지하는 CGV의 경우 연 2000명 정도의 신입 서비스 직원을 교육한다. 최근에는 60세 이상의 시니어 직원을 뽑기도 하지만 관리자급을 제외한 멀티플렉스의 서비스 직원은 20대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이다. 이 덕분에 30대인 기자는 꽤 ‘튀는’ 존재였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저 친절하고 예의바르면 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영화관객 연 2억 명 시대를 이끌었다는 멀티플렉스의 서비스는 진화했고 직원들의 업무도 까다로웠다.
기자는 지난달 말 멀티플렉스체인 CGV일산에서 이틀간 서비스 실습을 했다. 실습 전 3시간 넘게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담당자는 “능숙해지려면 3개월이 필요하다”고 했다. ‘솔’톤 목소리로 입꼬리를 올려 말하기, 양손 응대법을 훈련했다. “밝은 표정으로 어미를 좀 더 올려서 말하라”란 지적을 여러 번 받았다.
멀티플렉스에는 친절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매뉴얼로 가득하다. 매표에서는 “안녕하십니까, 어떤 영화 보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게 기본이지만 매점에선 바로 “주문하시겠습니까”로 시작해야 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영화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150가지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일러주는 매뉴얼북도 있다. 기자가 찾은 날 조회에서 직원들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관객에게 신분증을 요청하는 상황’을 매뉴얼에 따라 연습했다. 매뉴얼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라는 깨알 같은 디테일이 담겨 있었다.
업무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매표, 매점 그리고 티켓 검수와 영화관 청소를 하는 플로어. 이 중 매표 직원은 ‘영화관의 꽃’으로 불린다. 이들 중엔 미모의 여성이 많다. 한 영화관 매니저는 “매표는 극장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만큼 호감을 주는 인상이 중요하다”면서 “마음에 드는 여직원에게 표를 사려고 순번 대기표를 여럿 뽑아 기다리는 남자 고객 때문에 난처한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영화관 직원들은 6시간씩 3교대로 근무한다. 쉬는 시간은 30분. 매표 직원은 성수기 기준으로 6시간에 200∼300명의 고객을 만난다. 매표는 극장에서 감정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곳이라는데 직접 해보니 실감이 났다. ‘평균 티켓 발권시간은 50초’라는데 매번 5분 이상 헤맸다. 할인권과 관람권, 350개의 할인카드, 수십 종의 포인트 적립카드를 구분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환불 요청과 주차권 문의도 이어졌다. 기자가 상대한 ‘고객님’들은 감사하게도 별다른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건만 그들의 미세한 동공 흔들림까지 느껴져 등골이 서늘했다. 매표소 앞에서 두 번째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티켓 발권 직원을 지루하게 째려봤던 과거를 반성했다.
가장 고대했던 곳은 매점이다. 갓 튀긴 팝콘 시식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건강진단결과서(보건증)까지 떼어왔던 기자는 현장에서 서비스 ‘수준미달’로 실습을 거부당했다. 매점은 조리시설이 있어 위험한 데다 가장 난도가 높은 서비스가 요구된다고 했다.
고객이 팝콘을 주문하면 “고객님, 팝콘에는 고소, 달콤, 양파, 치즈가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주문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오징어는 “‘완제품 오징어’와 ‘구이오징어’가 있습니다. 다리와 몸통 중 어떤 것을 드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경쾌하게’ 던져야 했다. 주문 내역을 보고 “더 저렴한 세트메뉴가 있다”고 권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직원은 팝콘 한 알이라도 먹어선 안 된다. 달달한 버터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어떻게 유혹을 참느냐고 했더니 한 직원은 “한두 시간 일하다 보면 코가 마비된다”고 했다.
마지막 실습지는 플로어. 플로어 직원은 입장 안내와 청소 같은 극장의 나머지 서비스를 도맡는다. 상영관 안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차적으로 관객을 대피시키는 역할도 이들이 한다. 이날 기자가 받은 서비스 실습에는 안전 교육이 따로 포함돼 있진 않았다. CGV 측은 “직원별로 한 달에 두 번 소방과 보건 교육을 받으며 이때 공기호흡기, 소화기와 소화전, 비상손전등 사용법을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한 직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조회시간에 안전교육을 받을 정도로 강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근무해 받는 시간당 수당은 6000원 남짓. 오래 서 있어서인지 실습이 끝날 즈음엔 허리와 발가락이 유독 아팠다. 그러나 많은 직원은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했다. 직원에게 “너도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실수한 직원에게 “무릎 꿇고 빌라”고 요구하는 고객 등 황당한 에피소드는 다양했다. 이 때문일까. 영화관 서비스 직원의 평균 재직 기간은 5∼6개월에 그친다고 한다.
▼ 묶은머리-정장 유니폼에 빨간 립스틱… ▼ 직원 복장-용모 규정 철저
서비스 직원에 대한 호칭은 멀티플렉스마다 다르다. CGV는 미소지기, 롯데시네마는 드리미, 메가박스는 메아리라고 부른다. 사진은 CGV 미소지기의 모범 모델. CGV 제공“용모와 복장이 가장 중요해요. 저희끼리는 ‘보이는 게 다’라고 얘기도 하죠.”
교육담당자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내심 ‘나 정도면 됐지’ 했다. 샤워도 했고 머리에 비듬도 없었다. 전날 밤엔 손톱도 바짝 깎았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은 곧 깨졌다.
시작은 유니폼이었다. 직원들은 영화 홍보용 셔츠를 입기도 하지만 원래 유니폼은 정장이다. CGV 서비스교육팀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진 서양처럼 캐주얼한 유니폼을 입었지만 멀티플렉스 문화가 정착된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중한 느낌을 주는 유니폼으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허리 라인을 살린 반팔 블라우스와 무릎 위 길이의 타이트한 치마반바지에 팬티스타킹, 검정 단화를 갖춰 신어야 한다. 기자는 ‘66’ 사이즈인데 ‘보통’ 사이즈라고 건네받은 유니폼은 터무니없이 작았고 가장 큰 사이즈를 ‘겨우’ 입었다.
머리 모양도 문제였다. 규정대로라면 ‘이마를 드러내고 머리를 하나로 묶어 망에 정리해야’ 했지만 단발에 머리띠도 없어서 양쪽 머리를 귀 뒤로 바짝 넘겨 실핀을 두세 개씩 꽂았다. 더불어 귀걸이, 반지도 모두 제거. 매점에서 음식을 다룰 때 빠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란다.
여성의 경우 립스틱은 필수다. 교육담당자는 “어두운 영화관에서 빨간 립스틱은 시선을 집중시킨다. 빨간 립스틱을 발랐을 때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통계도 있다”고 했다. 생애 처음 바르는 빨간 립스틱은 ‘그동안 안 바르길 잘했다’ 싶었다.
그런 점에서 채용공고에는 ‘고교 졸업 이상 만 18세 이상’이라는 조건 외에 몇 가지를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예컨대 ‘과체중은 유니폼을 입으면 좌절할 수 있음’ ‘빨간 립스틱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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