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렬 울산대 교수는 “학교에서 차 몰고 10분만 가면 반구대 암각화를 볼 수 있다”면서 “오감으로 가까이 접했기에 반구대 소설을 쓰기에 적격자가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소설가이자 시인인 구광렬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58)는 2007년 5월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처음 마주했다. 압도하는 기(氣)를 느꼈다. 아찔했다. 그 순간 마음을 굳혔다. 암벽에 그림을 새기던 선사시대를 소설로 그리겠다고. 그리고 7년 뒤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장편 ‘반구대’(작가)가 나왔다.
9일 만난 구 교수는 “나는 된장을 담갔을 뿐이다”라고 했다. 우리 음식의 기본인 된장처럼 이 소설을 계기로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반구대 암각화가 활발히 다뤄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말하기에 앞서 대중이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선사시대 우리 선조의 생활상을 그리려고 관련 자료를 모았지만 생각보다 참고할 만한 게 많지 않았다. 암각화의 제작 연대, 새김 방법, 보존 대책 같은 기술적 문제를 다룬 학술논문뿐이었다. 나팔을 부는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새끼를 밴 고래, 가축을 길렀음 직한 울타리…. 암벽에 새겨진 300여 점의 그림이 저마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작가는 따라갔다.
기원전 4000년경 큰 어울림 가람(태화강)을 따라 늘어선 움집에서 인간들이 살아 숨쉬는 광경이 소설 속에 펼쳐진다. 족장의 배다른 아들인 큰주먹과 그리매를 중심으로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풍경과 누가, 왜, 어떻게 암각화를 새겼는지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달리 마음 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웃음) 다만 한자 도입 전인 6000년 전이 배경이어서 인물 간 대화를 순우리말로 쓰려고 했다. 단 한 단어 ‘벌(罰)’을 우리말로 못 바꿔서 아쉽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에야 삼과 유채가 외래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식물의 원산지를 다시 조사하는 일도 있었다. 구 교수는 이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다가 주제가 무겁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품인 거 안다. 나 홀로 간직할지언정 누군가는 써야 하는 작품이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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