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스스로에게 회초리 들 때”… 종교계, 세월호 참사 자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6일 03시 00분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는 개신교계와 사회 원로들.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제공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는 개신교계와 사회 원로들.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제공
“무책임한 정부에 가차 없는 회초리를 대야 한다” “정의를 지키지 못했으니 회초리를 들어 달라” “지금은 회초리를 맞아야 할 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인들에게서 나온 회초리 관련 발언들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다. 15일 개신교계에서는 말이 아니라 ‘진짜’ 회초리가 등장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는 ‘회초리 기도회’라는 낯선 명칭의 행사가 열렸다. 기도회장에는 ‘나부터 회개 세월호 추모회와 나부터 회초리 기도회’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이 기도회는 ‘나부터 회개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와 한국범죄예방국민운동본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것이다. ‘회초리 대성회’라는 이름으로 7월 7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앞당겨졌다.

104세로 한국 개신교 최고령 목회자인 방지일 목사는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방관덕(88) 이상모(83) 서상기(82) 최복규 목사(80) 등이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내리쳤다. 원로들이 연단 앞에서 회초리를 휘두르자 장내 분위기는 이내 숙연해졌다.

“작금의 우리나라에는 국민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과 인재 사고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전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한국교회에 책임이 있다.”

원로들의 말이다. 보기에 따라 회초리 기도회는 이벤트성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기도회까지 진행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대한불교조계종은 20일 오후 7시 종단 총본산인 서울 조계사에서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재를 갖는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공동으로 선악의 업을 짓고 공동으로 고락의 인과응보를 받는 일)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참회와 발원을 한다는 취지다.

20여 년 전 고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내 탓이오’ ‘나부터 회개’ ‘공업’이란 말의 종교적 발상은 다르지만 어느 것이든 관계없다. 핵심은 같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는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고 안전한 세상, 돈보다 생명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누구만의 책임이나 몫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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