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칸 영화제의 으뜸상은 황금종려상(palm d'or)이다. 이 상을 ‘대상’에 해당하는 그랑프리(grand prix)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 만하다. 칸 영화제가 정식 개막한 1946년 당시 최고상은 원래 그랑프리였다. 황금종려상이란 명칭은 1955년부터 도입됐다. 그러다 1964∼1973년 10년간 다시 그랑프리로 돌아갔다가 1974년부터 황금종려상으로 고정됐다. 그랑프리는 버금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의 호칭이 됐다.
문제는 황금종려상의 ‘종려(棕櫚)’라는 호칭에 있다. 종려(lady palm)는 중국 쓰촨 성 일대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로 잎이 부채꼴로 생겼다. 하지만 칸 영화제 로고 속 잎사귀는 길쭉한 야자(coconut palm)나무 잎의 형태다. 잎사귀 형태만 보면 일본 규슈 원산의 왜종려(windmill palm)에 더 가깝다.
이 나무들은 서양에서 모두 ‘팜 트리(palm tree)’로 분류된다. 세계적으로 2600종이나 되는 이 나무는 ‘생명의 나무’로도 불린다(2011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테런스 멜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였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이 나무만 있으면 열매를 먹고 줄기와 가지, 잎으로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 한자문화권서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열대 지역의 종려, 열대 지역의 야자를 혼용했다. 실제 국내 식물분류서를 찾아보면 종려목 또는 야자목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칸 영화제가 겨냥한 팜 트리는 대추야자(date palm)일 가능성이 크다. 중동 지역 오아시스에서 주로 자라는 이 나무의 학명은 ‘phoenix dactylifera’다. 최대 30m까지 자라는 나무를 불태워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난다 하여 불사조(phoenix), 성경 속 가나안 지역의 7가지 선물로 불리며 다산의 상징인 그 열매(대추야자)가 손가락을 닮았다(dactylifera)해서다. 모세 시대 이후 이스라엘과 기독교 국가가 된 로마에서 부활과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가 됐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환영 인파가 흔든 게 히브리어로 타마르인 이 나뭇가지였다. 국내 성경은 이를 종려나무로 번역했다. 하지만 종려나무는 열매를 먹을 수 없다. 크기도 4m까지밖에 안 자란다. 따라서 황금종려상은 엄밀히 말하면 ‘황금대추야자상’ 또는 ‘황금야자상’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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