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페이지쯤 읽다가 책을 덮고 택시를 탔다. 음식점에 대한 책이다. 책에 대한 기사가 결국 음식점에 대한 기사로 읽히지 않기 어렵다. 맛집을 소개하는 책과 블로그는 차고 넘쳐 어지럽다. 정보 제공자가 자신의 감각에 기대 빚은 글을 끝까지 읽을 것인지, 선택은 독자의 감각에 달렸다.
첫 장에 소개한 서울 연희로 식당. 점심 마감 45분 전이다. 구석에 앉아 저자가 꼽은 대표 메뉴를 주문했다. 책은 가방 속 깊숙이 감췄다. 음식에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블로거로 오해할까 싶어 스마트폰은 충전을 부탁했다.
인쇄된 음식 사진과 실물의 거리감은 한국과 브라질의 간격 정도다. 삶는 법을 레시피에 설명한 파스타면은 어째선지 소면으로 둔갑했다. 넉넉히 얹은 파르메산 치즈도 실물에는 흔적이 없다. 이것저것 입에 넣어봤다. 혀의 기억을 건드리는 모서리가 없다. 테이블 옆 창가에 늘어놓은 빈 와인병에 먼지가 소복했다.
감각은 지구인 각각의 주관이다. 그 천차만별을 감안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한 맛집을 타인에게 알리기는 늘 망설여진다. 한두 번의 행복한 맛을 그대로 다시 만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재료는 주방뿐 아니라 업장 전체를 책임지는 ‘오너셰프’다. 오너셰프의 최대 난제는 매력적인 레시피를 만드는 일일까. 그보다 처음 구축한 레시피를 꾸준히 지켜내는 쪽이 훨씬 더 어려워 보인다.
두 번째 장에 소개한 서울 독막로의 북유럽 가정식당 오너셰프는 “나만의 요리로 인기를 끄는 것도 좋지만 그러려면 가게를 유지해야 한다.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얄팍한 장사꾼이 돼서도 안 된다. 균형을 맞추며 버티게 하는 건 자존심뿐이다”라고 말했다. 책에 밝혔듯 이 오너셰프는 건물주와 계약연장 조건을 합의하지 못하고 지난달 초 가게를 닫았다.
두런두런 오너셰프와의 담백한 인터뷰에 치중한 것이 장점이다. 빠르게 훑어보고 눈에 걸리는 식당에 직접 가서 먹어본 뒤 꼼꼼히 다시 읽길 권한다. 음식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욕망은 접자. 똑같은 사진, 인터넷에 넘쳐난다. 눈앞의 접시는 자존심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오너셰프들의 생사를 건 전쟁터다. 그 승패의 판단은 감각을 열고 경험에 집중한 손님 각각의 소중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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