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오래 쓸 가구를 고를 때 살피면 유리한 부분이다. ‘잠깐 쓰고 바꿔도 좋은 가격’의 대량생산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스웨덴 가구기업 이케아의 한국 진출을 3개월 앞둔 마당에, 턱없이 한가한 소리일까.
국내 브랜드 가구업체는 부랴부랴 미심쩍은 고급화를 선언했다. 이제 막 소비층을 넓히기 시작한 개별 주문제작 중소업체가 선뜻 따라 나설 길은 아니다. 중소업체의 활로 중 하나는 ‘턱없이 한가한 소리’에 숨어 있다. 재료와 형태의 좋고 싫은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가격대와 디자인 취향을 정한 뒤의 기준은 디테일뿐이다. 깔끔하게 물린 튼튼한 경첩. 불안감 없이 여닫히는 서랍. 응당 그래야 할 듯한데, 그런 경첩과 서랍 만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사포질 한 번 더 해야죠.”
서울 마포구에서 가구카페 ‘폴앤리나’를 운영하는 김장원 씨(39)가 내놓은 ‘그런 경첩과 서랍 만들기’에 대한 답변이다. 그가 가구 주문제작 일을 시작한 건 10년 전이다. 합정역 뒷골목 2층 카페의 간판, 가구, 문짝, 창틀 등 안팎 모든 목제 인테리어를 손수 제작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가구를 주문제작하는 서울의 재미난 핸드드립 카페’로 소개되기도 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작업물의 공통된 특징은 집요한 마감 디테일이다. 경첩 나사못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열과 오를 칼같이 맞춰 박혔다. 서랍과 장 문짝은 헐거움과 빡빡함의 딱 중간 지점에 조율돼 있다. 옷장 안쪽 가장 깊은 구석의 질감과 전면에 드러난 표면의 질감 차이를 찾을 수 없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뭘 만들든 내가 먼저 결과물에 만족을 느껴야 합니다. 고민은 언제나 하나예요. ‘쓰는 사람이 얼마나 좋아해줄까.’ 그러려면 일단 만질 때 무조건 부드러워야 하고, 가까이 두었을 때 코에 닿는 향이 좋아야죠. 가구는 눈으로 감상하는 게 아니라 몸에 늘 닿게 해서 쓰는 대상이니까요.”
명함에 ‘디자인하는 목수’라고 직함을 박아 넣은 김 씨는 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다. 신촌에서 나무 공방을 하던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나 작업장 한구석을 얻어 어깨너머로 배우며 일을 시작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공방 가입비를 대신했다. 혼자서 가구 주문제작을 하겠다는 말에 친구가 답했다. “해봐. 그런데 금방 망할걸?”
“제작과 배송을 다 직접 하겠다니 바보처럼 보인 거죠. 배송 위탁하고 그 시간에 작업을 더 하지…. 하지만 그냥 제 생각대로 하고 싶었어요. 방문한 김에 못도 박아드리고, 짐도 옮겨드리고. 뭘 계산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가끔 차 몰고 멀리 모르는 곳 찾아가면, 재미있잖아요.”
주문이 밀려 작업장 주인이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 됐을 즈음 투자 제안이 들어왔다. 2006년 일산에 작업장을 내고 5년 동안 동업자와 함께 일했다. 트럭 한 대만 몰고 회사를 나오면서 공동대표 명패를 버린 까닭은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기본 2, 3개월 주문이 밀려 하루 12시간씩 휴일 없이 일했습니다. 아내가 분만할 때도 밤늦게 병원 들어가서 자고 새벽에 나왔죠. 간호사들은 남편 없는 산모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그동안 만든 가구의 애프터서비스만 맡아 이곳저곳 다니며 가족들과 캠핑을 했다. 김포에 새 작업장을 꾸리고 가구 전시를 겸한 카페를 연 건 3년 전이다. 주문은 다시 밀리고 그의 작업은 여전히 빠르지 않다. 잠깐 쓰고 바꿀 가구를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사포질을 한 번 더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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