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한 편에 1억?… ‘펑크’난 참고서에 뻥 뚫린 동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9일 03시 00분


출판사-저자 저작권 분쟁…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

《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송모 씨(37)는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의 과목별 단원 정리 문제집을 보다 이상한 걸 발견했다. 교과서에서 강조돼 있는 문학작품이 문제집의 지문이나 문제에서 빠져 있었던 것. 송 씨는 “지난해 학습용 전과를 샀을 때도 교과서에 수록된 자료 일부가 아예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송 씨 사례를 들어 이유를 묻자 해당 출판사들도 급소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童詩) 한 편에 1억 원을 달라는 이야기까지 듣습니다. 죽을 맛입니다.” 》     
      

17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 참고서 코너. 출판사들이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 저자와 저작권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참고서 내용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17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 참고서 코너. 출판사들이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 저자와 저작권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참고서 내용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출판사들 “참고서에 ‘펑크’나게 생겼어요”

출판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참고서 출판사들이 저작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참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교과서에 나온 문학작품의 저자들과 저작권 문제로 다투는 사례가 늘고 있는 탓이다.

저작권법(25조)상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은 저자에게 이용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사용 후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보상금을 저자에게 지급하면 된다. 영리보다는 교육 목적이 크기 때문. 하지만 교과서를 기반으로 만든 참고서는 저작권법 적용 대상이다. 참고서 출판 전에 교과서 속 문학작품 저자에게 이용 허락을 받은 뒤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참고서 출판 전 저작권 문제를 완벽히 마무리하는 출판사는 적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개정 교과서가 나오면 바로 참고서를 내야 한다. 시간 부족으로 저자에게 이용 동의를 받지 않고 작품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행태가 2, 3년 전까지는 관행으로 통했지만 ‘지식재산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출판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가 많아진 것이다. A출판사는 참고서 제작 시 일부 작가와 저작권 협의를 마무리하지 못했고 결국 2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B출판사 대표는 “동의 없이 참고서를 만들면 출판사가 완벽한 을(乙)이 된다”며 “200자 원고지 1장 기준으로 30만 원(1만 부 기준)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참고서 내 문학작품 저작권료의 시장가도 2010년경 편당 10만 원 내외에서 올해 15만 원 내외로 올랐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출판사들이 저작권 문제가 되는 작품을 빼고 참고서를 내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 작가들 “당연한 권리”… 결국 학생들만 피해

작가들은 동의 없이 작품을 싣고 추후 일방 통보해온 출판사의 ‘횡포’에 일침을 놓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올 2월 서울중앙지법이 ‘노벨과 개미’ 출판사가 저자 동의 없이 시를 참고서에 실은 것에 대해 18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승인 저작권 신탁(信託)기관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책정한 참고서 사용료 기준이 일반 출판물 저작권료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점도 문제다. 신탁회원 3900명을 보유한 이 협회는 매년 문체부의 조율을 거쳐 저작권료를 산정한다. 올해 기준으로 △시나 시조 1편 수록할 때 2만1600원(1만 부 기준) △소설 300자 원고지 1장당 1390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협회를 탈퇴해 출판 저작권 대행 중개업체를 이용하는 작가도 생겼다. 대행업체는 작가들을 대신해 저작권 계약을 한다. 과거 참고서까지 뒤져서 출판사로부터 저작권 침해 피해보상을 요구한다. 협회 손정달 사무국장은 “정부 차원에서 저작권 사용료 기준을 현실화해주는 한편 저작권료를 협회 기준의 10배까지 요구하는 대행업체가 자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 자율에 맡길 문제라며 손을 놓고 있다. 문체부 임병대 저작권산업과장은 “신탁기관에 가입할지 혹은 대행업체를 내세울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초등학생 딸을 둔 회사원 박재섭 씨(40)는 “교과서의 중요한 부분이 참고서에서 누락되면 해당 참고서로 공부하는 아이들만 손해”라며 “작가와 출판사들이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저작권#참고서#지식재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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