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현민 씨 “난 수다떨기 좋아하는 아저씨… 작가 아닌 가장정신으로 버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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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대하사극 KBS1 ‘정도전’의 작가 정현민 씨

30㎡(약 9평) 크기의 작업실은 단출했다. 벽에 붙여놓은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3장과 책꽂이 가득 꽂힌 역사서적 외에 책상머리에 붙어 있는 ‘노동, 세상을 꽃피우는 일’이라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글씨가 눈에 띄었다. 정현민 작가는 “앞으로 현대사 관련 작품이나 현대 정치를 다룬 드라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30㎡(약 9평) 크기의 작업실은 단출했다. 벽에 붙여놓은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3장과 책꽂이 가득 꽂힌 역사서적 외에 책상머리에 붙어 있는 ‘노동, 세상을 꽃피우는 일’이라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글씨가 눈에 띄었다. 정현민 작가는 “앞으로 현대사 관련 작품이나 현대 정치를 다룬 드라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이 29일 종영한다. 올 초 10% 남짓한 시청률로 시작한 ‘정도전’은 극 중반에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섰고, 지금은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KBS에서는 “KBS2 ‘개그콘서트’ 시청률 하락의 주범은 ‘정도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현민 작가(44)는 지금까지 사극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정도전을 21세기로 불러내 정통사극 신드롬을 일으킨 주역이다. 드라마가 뜨면서 작가의 이력도 화제가 됐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고 10년간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마흔에 방송작가로 데뷔해 4년 만에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22일 서울 마포구 당산동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홍자매(방송작가 홍정은·미란) 드라마를 좋아하는, 수다 떨기 좋아하는 아저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

―‘정도전’의 인기 비결이 뭘까.

“고려 말 조선 초가 재미있는 시대다. 지금이 고려 말의 난세는 아니지만 그 시대가 주는 경고는 의미 있다. 예컨대 양극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정도전이라는 사람,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추진력 있고 진정성 있는 혁명가를 많은 사람이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많았다. ‘용의 눈물’처럼 성공을 거둔 전작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20, 30대에는 ‘용의 눈물’을 포함해 드라마를 거의 안 봤다. 모르니까 용감한 거다.”

―그런데 어떻게 드라마 작가가 됐나.

“국회 있을 때 보좌관 세계를 취재하는 방송작가 김윤영 씨를 만났는데 내게 이야기하는 재능이 있다면서 길 건너편에 있는 여의도 방송작가교육원에 다녀보라고 했다. 매번 법안 가지고 싸우며 살다가 작가지망생들 만나니까 너무 재밌더라. 운 좋게도 교육원에 다닌 이듬해인 2009년 KBS 극본공모에 당선됐다. 아내에게 ‘알바를 해서라도 빚을 지진 않을 테니 2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5부작 ‘자유인 이회영’(2010년)으로 데뷔했다.”

―원래 글을 잘 썼나.

“공고 졸업하고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대학 들어가 데모하면서 대자보 같은 것은 많이 썼다. 노동 전문 매체 기자로도 일했다. 그렇지만 소설가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꿈이 있었겠지. 친구가 ‘남자는 나이 40에 새로운 꿈을 꿀 수 없다’고 하는데 괜한 오기가 생겼다.”

‘정도전’은 아저씨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체 시청자의 40% 이상이 40대 이상 남성들이다. KBS 제공
‘정도전’은 아저씨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체 시청자의 40% 이상이 40대 이상 남성들이다. KBS 제공
―‘정도전’을 쓰면서 참고한 정치인이 있나.

“초반 주목받은 이인임(박영규 분)은 세도가의 자제로 처세의 달인이었는데, 보좌관 하면서 봤던 다선 의원들과 비슷하다. 신진사대부의 모습은 옛 386과 닮았다. 이성계는 보좌관하면서 모셨던 박인상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의 캐릭터를 입히려고 했는데 잘되진 않았다. 그리고 정도전을 이런저런 정치인과 비교를 많이 하던데 아니다. 전 직장이 국회이다 보니 현실 정치가들 가운데 누군가를 신비감을 갖고 좋아하진 않는다.”

―노동운동을 했는데 나중엔 새누리당 보좌관을 했다.

“10년간 이경재 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 5명을 모셨다. 계속 노동 관련 위원회에 있었으니 노동에 대한 지조는 지켰다. 나는 생계형 보좌관이었다.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면서 생각의 균형이 잡혔다. 양자를 경험해본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다. 10년 전 투사적 스타일의 정현민이라면 이런 드라마는 안 썼을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석 달 정도는 드라마 생각 안 할 거다. 3개월 이상 지속한 직업이 13개인데 작가가 가장 힘들다. 작가 정신이 아닌 가장 정신으로 버텼다. 다만 ‘정도전’을 쓰면서 작가가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과거엔 보좌관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도 자주 했는데 그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거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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