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쥔 ‘젠틀맨의 사랑과 살인 가이드’. 유명 배우가 출연하거나 화려한 경력의 제작진이 참여한 작품은 아니지만 비평가의 잇단 호평과 관객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작으로 거듭났다. 사진 출처 젠틀맨의 사랑과 살인 가이드 홈페이지
18일 오후 7시 30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48번가에 들어서자마자 월터 커 극장의 ‘젠틀맨의 사랑과 살인 가이드(A gentleman's guide to love and murder)’ 공연 포스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포스터와 함께 ‘2014년 토니상 뮤지컬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이 번쩍였다.
극장 앞엔 ‘젠틀맨…’의 표를 손에 쥔 사람들이 길을 따라 100m 정도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사이로 표를 구하지 못한 한 중국 여성 관광객이 “내게 표를 팔 생각이 없느냐”며 여기저기 묻고 다녔다.
요즘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뜨거운’ 뮤지컬은 역시 8일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연출, 각본, 의상)을 수상한 ‘젠틀맨…’이다.
뮤지컬 ‘젠틀맨의 사랑과 살인 가이드’가 공연 중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48번가 월터 커 극장 앞 풍경. ‘토니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이 번쩍거린다. 뉴욕=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지난해 10월 브로드웨이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만 해도 흥행 성적이 초라했지만 할인표는 고사하고 정가표도 구하기 힘들 정도다. 브로드웨이에선 대부분의 작품이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티켓 가격을 달리 책정하고 있는데 최근 수요가 급증한 ‘젠틀맨…’의 티켓은 다른 공연보다 10달러 정도 비쌌다. ‘젠틀맨…’은 초기에는 가장 비싼 프리미엄석(250달러)을 전체 좌석의 10%로 배정했는데 토니상 후보작에 오른 뒤부터는 그 비율을 25%로 늘렸다.
‘젠틀맨…’은 로이 호니먼의 소설 ‘이스라엘 랭크-범죄자의 자서전’(1907년)과 이를 영화화한 ‘친절한 마음과 화관’(1949년)을 다시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기발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지만, 피 한 방울 튀기지 않는다. 그 대신 빠른 속도감과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내며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이야기는 1909년 런던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된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를 여읜 청년 몬티(브라이스 핑크햄)에게 정체 모를 할머니가 등장해 그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폭로한다. “몬티, 너는 영국의 명문가 다이스큇 백작의 후계 서열 아홉 번째 귀족이란다.”
몬티의 어머니는 명문가의 딸이었지만 가난한 음악가인 몬티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가문에서 쫓겨났던 것. 몬티는 다이스큇 가문에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돌아온 것은 “이 문제로 다시 연락하면 신고해 버린다”는 냉정한 답변.
‘젠틀맨…’의 재미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몬티가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다이스큇 가문 사람을 하나둘 살해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 기상천외하다. 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때 빙판을 톱질해서 물에 빠져 죽게 한다거나 꿀을 좋아하는 친척의 모자에 꿀을 듬뿍 발라 벌에 쏘이게 하는 식이다. 관객은 쉴 새 없이 웃느라 바빴다.
로버트 프리드먼이 쓴 재치 있는 대사와 스티븐 루트박이 쓴 가사의 탄탄한 힘이 느껴졌다. 무대는 본무대에 작은 무대가 이중으로 설치된 액자구조다. 무대전환이 많지 않음에도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효과를 낳았다.
극의 재미를 한층 살린 건 주인공 몬티가 아닌, 다이스큇 가문 1인 8역을 연기한 배우 제퍼슨 메이스(영화에선 앨릭 기니스가 연기)다. 모두 다른 사람이 연기하듯,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 그의 연기는 경탄을 자아낸다. 커튼콜 때 그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본 뉴요커 제니퍼 페리(57)는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추천해서 보러 왔는데 유명한 프로듀서가 만든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입소문이 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며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재미난 대사에 공연 내내 실컷 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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