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효율보다 안전 우선! 은행 적금 다시 보기

  • 우먼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4일 17시 42분


재테크 분야에서조차 우리는 ‘빨리빨리’였다. 무조건 서두르는 문화에 푹 빠져 안전보다 효율을 우선시했던 병폐가 가정 경제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던 것이다. 금융회사가 망하고 돈을 날리는 재앙이 반복됐지만 그때뿐, 근본적인 반성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세월이 효율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라 한다.


우리가 금융상품에 가입하거나 주식 투자를 할 때 어땠는지 곰곰이 생각보자. 남들에게 뒤질까봐 앞뒤 재지 않고 빨리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월급 중 50만원을 떼어 투자하면서 금방 1백만원으로 불어나길 바라는 조급증을 누구나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위험한 후순위채를 덥석 사 낭패를 봤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주식이 대박 날 것이라는 허황된 말만 듣고 재산을 몰아넣었다가 깡통을 차게 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이제 재테크도 속도보다 방향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금방 대박을 터뜨리겠다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안전하게 꾸준히 돈을 불려나가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런 은근한 재테크 태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적당한 상품이 바로 은행 적금이다.

적금 푸대접해온 재테크 풍토
그동안 많은 재테크 전문가들은 돈 떼일 염려가 없는데도 이자가 적다는 이유로 은행 적금을 푸대접했다. 그저 돈을 보관만 해주는 ‘돼지 저금통’이라고 폄훼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연간 최대 4%의 적금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식의 은행 광고가 있다고 하자. 이 말이 매달 1백만원씩 1년간 1천2백만원을 넣으면 48만원(1천2백만원×4%)의 이자를 준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1백만원씩 넣을 때 첫째 달 적립액에는 4% 금리를 준다. 두 번째 달은 4%×12분의 11, 세 번째 달은 4%×12분의 10, 네 번째 달은 4%×12분의 9 등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실제 이자율이 줄어든다. 마지막 달 적립액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4%×12분의 1, 즉 0.3%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1백만원씩 1년간 4% 이자를 준다고 광고한 적금에 돈을 넣었을 때 나중에 받는 이자는 48만원이 아니라 2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세금까지 떼기 때문에 실제 연이율은 2%도 안 된다.
이런 연이율의 의미를 잘 알아둬야 하지만, 적금은 여전히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다. 우리 주변에는 금펀드, 신흥시장펀드, 개별 유망주식, 변액연금보험, 틈새 부동산 등 귀가 솔깃해지는 투자처가 얼마나 많나. 이런 투자처의 장점은 잘되면 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안겨준다는 것이고, 단점은 불안하다는 것이다. 반면 적금은 뚝배기처럼 단순, 담백하다. 그저 ‘꾸준히 돈 좀 모아보자’ 하는 한 방향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다. 금융시장이 외부 충격에 흔들릴 때마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약장수가 하는 말 같지만 ‘원금에 손실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 은행이 아닌 2금융권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불안한 사람, 여유자금이 없어 투자라는 걸 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거창한 재테크 계획을 짜기보다 적금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최근 은행 적금 금리는 매우 낮다. 은행들이 고객 자금을 유치해도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 보니 굳이 높은 금리를 주면서 적금을 팔려 하지 않는 것이다.

지방은행 적금 금리가 높은 편
대형 시중은행의 정기적금 금리는 대부분 2% 중후반대다. 1, 2년씩 목돈을 한꺼번에 예치하는 정기예금 금리는 이보다 더 낮아 1%대의 금리만 주는 은행도 적지 않다.
비교적 높은 적금 금리를 주는 곳은 지방은행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월 13일 현재 12개월짜리 적금에서 3%대 금리를 주는 곳은 전북, 제주, 부산은행 등이다. 광주, 외환, 하나은행도 연 2.9%로 높은 편이다.
일반 적금 이외에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에게 높은 금리를 주는 특판 적금도 눈여겨볼 만하다.
예를 들어 하나은행의 ‘Let’s Go 브라질 오! 필승 코리아 적금 2014’는 6월 말까지 판매하는데, 3년 만기 적금의 경우 기본 금리가 연 3.5%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한국팀이 월드컵 16강에 들면 연 0.1%포인트를 얹어주고, 8강에 들면 연 0.2%포인트를 더해줘 최고 3.8%까지 높아진다.

‘풍차 돌리기’식 적금 가입법
적금 상품을 골랐다면 가입 방법을 고를 차례. 여기선 일명 ‘풍차 돌리기’ 방법을 소개해본다. 먼저 머릿속에 12개의 날개가 달린 풍차를 그려보자. 각 날개는 1월부터 12월을 의미하며 각 날개마다 적금 통장이 하나씩 달려 있다. 먼저 1월에 매달 10만원을 넣는 통장을 하나 만든다. 2월에는 통장 하나를 더 추가해 10만원짜리 적금 통장 2개를 보유하고, 3월에는 3개를 보유해 결국 12월에는 매달 10만원을 넣는 적금 통장 12개를 갖게 된다. 첫 달에는 10만원만 불입하면 되지만 맨 마지막달에는 1백20만원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커진다. 그래도 도시근로자가구 평균 소득(4인 가구 기준 월 5백10만원) 정도 버는 사람이고 다른 투자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1백20만원 정도는 저축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13개월째 되는 달부터 열두 달 동안 원금 1백20만원에 이자가 붙은 적금 통장이 순서대로 만기를 맞게 된다.
적금이 12개월을 꽉 채우면 이를 다시 1년 만기 정기예금에 넣는다. 이때 중요한 점은 만기가 돼도 매달 1백20만원을 저축을 위해 떼어두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면 첫 번째 적금 만기 금액(1백20만원+이자)에 10만원을 더한 ‘1백30만원+이자’만큼을 정기예금에 넣을 수 있다. 그 다음 적금 만기 월에는 20만원을 더한 ‘1백40만원+이자’를 정기예금에 넣을 수 있고 마지막 적금 만기 월에는 만기 도래액에 1백20만원을 더한 ‘2백40만원+이자’만큼을 정기예금에 불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적금 풍차 돌리기’를 하다 1년 뒤에는 ‘정기예금 풍차 돌리기’를 하는 셈이다. 이렇게 2년이 지나면 ‘2천2백20만원+이자’라는 목돈이 생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재테크라는 걸 할 여지가 생긴다.
지름신도 적금 앞에서는 꼼짝마!
미처 몰랐던 적금의 장점들

미국에는 은행 적금이라는 게 없다. 일부 한국계 은행들이 적금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 은행들은 적금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퇴직연금계좌에 돈을 정기적으로 불입하는 데다 펀드와 주식 투자가 일반화돼 굳이 적금을 들 필요가 없어서다.
하지만 최근 미국인들 중 한국계 은행에 6개월이나 1년짜리 적금에 드는 사람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몇 개월 뒤에 쓸 휴가자금이나 결혼자금 같은 단기 자금을 넣어두기에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금은 원금을 떼일 염려 없이 안정적으로 돈을 불입할 수 있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뿐 아니다. 수입의 일부를 꾸준히 적립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지출 패턴 자체를 바꿔 궁극적으로 은퇴 이후를 대비토록 하는 의미가 있다.
은행의 PB가 들려준 A씨 사례가 바로 그렇다. A씨는 직장 생활 10년 동안 저축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어디다 돈을 쓰는지도 몰랐다. PB는 그에게 우선 월급의 5%를 적금에 들 것을 권했다. 월급이 4백만원 정도인 A씨는 매번 월급을 다 썼기 때문에 지출이 매달 최소 4백만원은 되는 셈이었다. PB 말대로 1월에 월급을 받자마자 일단 5%인 20만원을 떼어 다른 통장에 넣어두고 그 통장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기로 했다.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2월이 되자 PB는 적금 비중을 10%로 늘리라고 했다. 그러자 40만원을 떼어 20만원은 기존 적금 통장에 넣고 20만원으로는 다른 적금 통장을 새로 만들었다. 남은 돈 3백60만원으로도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3월부터 저축 비율을 20%로 늘려 매달 80만원을 적금에 들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즐겨 마시던 특정 브랜드 와인을 백화점 매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는 없었다. 마트 판촉행사 때 묶음으로 할인 판매하는 와인을 찾게 됐다.
과거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푼돈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자동차세를 미리 내면 일부를 환급해주는 제도를 잘 이용하면 3만~4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지만 전에는 ‘귀찮게 뭘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냐’는 식이었다. 그런 그가 저축을 늘리면서 알뜰한 소비 습관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저축을 늘리면 소비 패턴이 달라지는데, 이건 나이가 들수록 대단히 큰 힘을 발휘한다. A씨의 나이가 40대 후반으로 갈 때까지 월급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이 절제하는 소비 습관에 익숙하지 않다면 소비는 월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가 50대에 접어들면 월급의 천장에 부딪히게 된다. 회사에서는 그의 업무량을 줄이는 대신 월급을 줄이거나 심지어 퇴출시키려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 됐을 때 비로소 소비를 줄이려 한다면 그건 가정을 깨뜨릴 정도의 재앙이다. A씨의 20% 저축 습관은 20% 소비 억제 습관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적금은 은퇴 시기 소득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내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적금은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돈을 넣어두면 가격이 출렁거리거나 자금 회수가 힘들 때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큰 부자는 이런 스트레스에 초연한 경향이 있지만 소시민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
또 적금을 하면 이른바 충동적 소비 때문에 생기는 공허함을 줄일 수 있다. 1년 만기 적금에 가입한 A씨는 어느 날 수백만원짜리 산악용 자전거를 사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지금까지 넣은 적금을 깨고 신용대출을 조금 받으면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 포기했다. 적금을 든 덕분에 그는 돈을 당장 빼 쓸 수 없었고 자신을 돌아볼 일주일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동아일보 홍수용 기자 기획재정부를 출입하고 있다. 재테크 서적인 ‘나는 죽을 때까지 월급 받으며 살고 싶다’(레인메이커)를 썼다.

글·홍수용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사진·REX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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