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농이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경남 밀양엔 백중(百中·음력 7월 보름) 즈음 열리는 ‘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란 행사가 전해진다. 고된 농사일에 지친 머슴이 하루 휴가를 즐긴다는 의미에서 ‘머슴 날’이라고도 했다. 이 축제엔 꽹과리니 징이니 여러 악기가 쓰이는데, 이때 장독 뚜껑 장구도 등장한다. 공식 명칭은 흙을 구운 사기로 만들었다 해서 ‘사(沙)장구’라 부른다.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이 열고 있는 특별전 ‘악기, 무형을 담다’는 사장구처럼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선조의 지혜가 담긴 전통악기들이 대거 선보여 눈길을 끈다. 왕실부터 저잣거리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쓰인 악기 152점이 전시 중이다.
궁중악기 ‘축’. 국립무형유산원 제공사장구는 조선 성종 24년(1493년) 왕명으로 편찬된 음악이론서 ‘악학궤범(樂學軌範)’에도 나온다. “큰 장구는 질그릇으로, 작은 장구는 나무로 만든다”는 내용을 감안하면 나름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악기를 제작할 돈이 궁했던 민초들이 생활용품이던 장독을 재활용한 것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방인아 학예연구관은 “장독 뚜껑이 무겁다 보니 여느 장구와 달리 허리에 매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고 연주했다”며 “여타 장구보다 훨씬 묵직하고 투박한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밀양백중놀이엔 사장구 말고 ‘물장구’란 악기도 있다. 지름이 40cm쯤 되는 자배기(둥글넓적한 옹기그릇)에 물을 반쯤 채우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 띄우면 완성된다. 장구채나 똬리, 손바닥을 이용해 바가지를 치며 리듬을 탄다. 물을 이용하다 보니 소리가 맑고 선명하며 풍부한 저음을 표현할 수 있다.
제주에만 전해지는 ‘설쇠’도 겉모습만 보면 악기가 맞나 싶다. 고운 가루를 치는 체를 뒤집어 놓고, 놋주발을 엎어 올린 뒤 나무 채로 두드린다. 제주시 건입동에 전해지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에 주로 쓰이는데 음이 상당히 높다. 방 학예관은 “꽹과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훨씬 청명한 음색을 지녔다”고 말했다.
이런 악기들이 서민 냄새가 물씬하다면 종묘제례악에 쓰인 궁중악기는 모양새부터 거창하고 화려하다.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타악기 ‘축(()’은 사다리꼴 육면체 나무상자처럼 생겼다. 위에 뚫린 구멍으로 방망이를 넣고 절구질하듯 내리친다. 다소 둔탁한 소리가 나는데,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호랑이처럼 생긴 악기도 있다. 길이 1m 정도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인 ‘어(어)’는 아홉 가닥으로 쪼개진 대나무 채로 호랑이 머리를 치거나 톱니처럼 만든 등줄기를 긁어 소리를 낸다. 축과 반대로 연주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다음 달 17일까지. 063-28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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