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를 일삼는 현대 산업사회는 결국 붕괴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스스로를 낮추고 검소함을 강조한 한국의 전통문화, 유교적 가치를 돌이켜봐야 할 때입니다.”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미래학을 개척한 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81)의 입에서 전통과 유교라는 복고적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미래학자가 정작 우리에겐 잊혀지고 있는 옛 가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데이터 교수는 ‘현대 세계 속의 유교적 가치’를 주제로 경북 안동시에서 6일까지 열린 ‘21세기 인문가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4일 한국을 찾았다. 팔순의 나이에도 수수한 티셔츠와 청바지만 걸친 채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입국장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흡사 검박한 유생(儒生)을 연상케 했다.
“뭐든 아끼려고 노력해요. 출퇴근할 때에도 기름을 아끼려고 1981년산 오토바이를 수리해서 지금껏 타고 다닙니다.”
데이터 교수가 일상에서 자원 낭비를 극도로 경계하는 건 그의 학문 철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석유 고갈과 환경 재앙, 금융 시스템 붕괴가 인류 문명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로 산업사회가 붕괴 수준에 이르면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되는 ‘생존사회(survival society)’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이 국면에선 소비를 부추기는 문화가 사라지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데이터 교수는 “서울을 찾을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조명과 광고들이 범람하는 걸 보면 정말 걱정스럽다”며 “한국이 예전의 검박한 정신문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매년 3, 4차례 방문할 정도로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다. 1989년 황장엽 당시 노동당 비서의 초청을 받고 북한 김일성대에서 미래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일본 릿쿄(立敎)대 교수로 6년간 재직한 지일파이지만 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국가가 스스로를 지킬 권리는 있어요. 하지만 이번 결정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아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단계로까지 나아갈 겁니다. 다시 예전의 군국주의 국가로 돌아가고 있어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일각의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중국은 더이상 1920∼30년대의 약한 나라가 아니에요. 일본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라 강력한 중국을 견제하고 세력균형을 가져올 능력이 없습니다. 일본의 호전적인 태도가 오히려 현재의 안정된 동북아 정세를 깨뜨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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