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땅속으로 가지만 시선은 하늘의 빛을 향하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경기 당선작 설명회
천주교 성인 103위중 44위 순교 장소
지하에 조성된 텅 빈 두 광장은 순수한 신념의 이미지로 채워
종교 무관 누구나 편히 찾는 곳으로

내년 9월 착공 예정인 서울 서소문밖 역사유적지의 설계경기 당선작 조감도. 방문자는 중앙의 지하 1층 사각형 광장 공간부터 경험하기 시작해 남쪽의 지하 3층 광장(위쪽 사진)으로 나와 순례를 마무리한다. 인터커드 제공
내년 9월 착공 예정인 서울 서소문밖 역사유적지의 설계경기 당선작 조감도. 방문자는 중앙의 지하 1층 사각형 광장 공간부터 경험하기 시작해 남쪽의 지하 3층 광장(위쪽 사진)으로 나와 순례를 마무리한다. 인터커드 제공
“경의선 철도와 고가도로,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느슨한 관계를 맺고 산만하게 난립한 지역이다. 공공 공간의 역할을 찾기가 쉽지 않다. 땅속으로 파고든 두 광장을 중심으로 일상적 공원과 종교 성지로서의 기능을 함께 풀어내고자 했다.”

서울 중구가 2월 발주한 칠패로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조성 계획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났다. 9일 종로구 자하문로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열린 설계경기 당선작 설명회에서 당선자인 윤승현 인터커드건축사사무소 대표(공동출품자 이규상 보이드 대표, 우준승 레스건축 대표)는 “새로운 힘을 더하지 않고 공간을 잘 비워낼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2만4000m² 면적의 역사공원 한가운데 솟은 6층 높이 순례타워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땅 밑으로 넣었다. 직선 경사로를 내려밟은 방문자가 처음 만나는 것은 사각형의 하늘을 열어둔 지하 1층 진입광장이다. 지하 2층 소성당과 전시실을 지나 한 층을 더 내려가면 대성당을 거쳐 다시 하늘을 향해 열린 지하광장으로 나간다.

윤 대표는 “몸은 땅속으로 들어가지만 시선은 빛이 들이치는 하늘을 향하게 된다. 조선시대 내내 사형장으로 쓰인 곳이지만 어두운 죽음보다는 순수한 신념의 이미지를 품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천주교 103위(位) 순교성인 중 44위가 희생된 장소다. 다음 달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식 주례 전 방문할 예정이다. 김기헌 중구 주무관은 “한국 천주교에는 마포구 절두산순교성지보다 중요한 공간이다. 천주교도에게 이번 역사유적지 조성은 오랜 염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산과 공간의 성격을 감안해 보다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8월 완공을 목표로 투입되는 예산 513억 원의 출처는 중구,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자금. 김 주무관은 “천주교 성지의 가치를 공간이 가진 역사의 일부로만 안고 가도록,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방문자가 역사를 반추할 계기를 얻는 공간을 요구했다. 디자인의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부분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건립 예산 모금을 시작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동 예배시설인 ‘하우스 오브 원’ 계획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쉽지 않겠지만 종교적 색채를 끌어안으면서도 누구나 편안히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