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그룹 f(x)의 음악은 경쾌한 만큼 우울하거나 병적이다. 왼쪽부터 엠버, 크리스탈, 설리, 빅토리아, 루나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 SM엔터테인먼트 제공
H.O.T.=‘10대들의 하이파이브’, 동방신기=‘동방의 신이 일어선다’, 샤이니=‘빛나는 남자들’, 엑소=‘태양계 밖 행성에서 온 초능력자들’….
SM엔터테인먼트의 작명 감각은 대개 ‘첨엔 갸우뚱, 나중엔 끄덕’이다. 유치하냐 아니냐를 떠나 콘셉트 하난 확실했다. 예외는 f(x)다. f(x) 등식의 오른쪽에 어울리는 답은 기껏해야 ‘알쏭달쏭’이다. ‘함수 그룹’이란 애칭의 이들은 한국 아이돌을 통틀어도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이미지다. 말 그대로 알쏭달쏭.
이 5인조 여성 그룹은 요즘 평론가 집단이 음악으로 가장 주목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초기 곡 ‘라차타’ ‘추’가 예쁘장한 그룹의 탄생을 알리는 데 그쳤다면 ‘누 예삐오’부터 ‘첫 사랑니’까지는 새 모델의 제시였다. 전기기타로 연주한다면 영락없이 헤비메탈인, 어둡고 불길한 반음계 반복악절은 f(x) 타이틀곡의 테마로 줄곧 활용됐다. 전자음악과 힙합의 비틀린 응용이 여기 섞여들었다.
‘독창적 별명짓기/예를 들면 꿍디꿍디’(‘누 예삐오’), ‘난 지금 데인저/한 겹 두 겹 패스츄리처럼 얇게요’(‘피노키오’),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핫 서머’), ‘의사 선생님/이건 뭔가요?’(‘일렉트릭 쇼크’), ‘나는 좀 다를걸/다른 애들을 다 밀어내고 자리를 잡지’(‘첫 사랑니’) 같은 이상한 가사는 f(x)의 전매특허가 됐다. 멀쩡한, 아니 심지어 예쁜 멤버들 얼굴을 동물 탈 씌워 가린 사진을 표지에 사용한 ‘일렉트릭 쇼크’가 대표하는 별난 이미지도 f(x)의 것이었다.
f(x)가 최근 낸 3집 ‘레드 라이트’의 타이틀 곡 ‘레드 라이트’에서도 이런 공식은 이어진다. 음표의 낙차가 옥타브 단위로 커졌을 뿐 여전한 반음계 반복악절 테마. 새로운 대표 이미지는 오드아이다. ‘짝짝이 눈’은 멤버들의 비대칭 눈 화장, 뮤직비디오 속 고양이 눈으로 표현된다.
노랫말만이 f(x) 곡선을 좀 벗어난다. ‘눈 크게 떠/거기 충돌 직전/폭주를 멈춰… 그 앞에 모두 침몰할 때… 파란불/우린 기다려, 원해…’ 첫사랑의 알 수 없는 감정을 주로 읊던 f(x)가 세월호 참사와 경직된 사회에 ‘레드카드’라도 꺼내든 것 같다. ‘진짜 사랑이란 어쩌면 아주 느린 파동 (아주 느린 파동)’만 수박 조각처럼 도려내면 사회 저항 노래로 읽힐 정도다.
‘레드 라이트’는 ‘라차타’(작사·작곡·편곡 켄지)를 제외한 다른 f(x)의 히트작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작곡가 여럿이 함께 작곡했다. 노랫말은 ‘알쏭달쏭’ 가사에 일가견 있는 한국인 작곡가 켄지가 지었다. 일기장이나 책 귀퉁이에 끼적이다 만 듯한 자동기술법적인 문구들. 지극히 개인적인 텍스트에 대중적인 팝을 결합해 내는 게 f(x)의 장사법이다.
전문가들은 ‘레드 라이트’가 후렴구의 폭발력, 악곡의 중독성에서 예전에 비해 약하다고 평했다. 시종 귀를 자극하는 극단적인 저음, ‘눈 크게 떠’부터 ‘침몰할 때’까지의 둔중한 록 음악 같은 질주감은 신선하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f(x)의 특징이랄 수 있는 미니멀한 전개보다 다소 과장된 표현에 방점이 찍힌다. 약간은 낯선 스펙터클”이라고 했다. 이경준 평론가는 “뒷맛이 깔끔했던 이전 곡과 달리 이번엔 신랄한 메시지를 입혔다. 앨범에는 여러 번 들어야 확인할 수 있는 ‘함수’만의 매력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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