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기타를 든 ‘레이디 가가’

24일 첫 내한공연 갖는 美 팝스타 세인트 빈센트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로큰롤 명예의 전당’ 너바나 헌액 기념 공연에서 커트 코베인 대신 ‘리시엄(Lithium)’을 부른 세인트 빈센트(오른쪽). 무대 뒤 화면은 코베인의 생전 사진. 왼쪽은 너바나 전 멤버 데이브 그롤. 세인트 빈센트 홈페이지

세인트 빈센트(32)의 음악은 소독된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22세기 도시 같다.

그곳에서 기쁨이나 슬픔은 회색빛으로 탈색되고 감정의 고저만이 이퀄라이저처럼 차갑게 표시될 뿐이다. 클라이맥스는 강렬하되 뒤틀려 있다. 멸종된 감정 같은 슬픈 멜로디가 이따금 하늘에서 내린다.

‘세인트 빈센트’ 표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최근 가디언, NPR, 뉴요커 같은 여러 해외 매체가 2014 상반기 최고 앨범에 그의 4집 ‘세인트 빈센트’를 올렸다. 이 미국 인디 팝 가수 겸 기타리스트는 24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예스24 무브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연다. 7만7000원, 02-322-2395

전기기타 멘 여성 팝스타의 등장이 얼마만인가. 이기 아잘레아, 케이티 페리 같은 관능적인 여성 스타가 각광받는 요즘, 빈센트는 뮤직비디오 속에 박제되길 거부하고 무대를 기타 멘 채 휘젓는다. ‘세인트 빈센트’는 빌보드 앨범 차트 12위까지 올랐다. 4월엔 전설적인 록 밴드 너바나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축하 공연에서 리더 커트 코베인(1967∼1994)을 대신해 노래하고 기타 쳤다.

본명(애니 클라크)으로 미국 인디 뮤지션 폴리포닉 스프리, 수프얀 스티븐스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시인 딜런 토머스(1914∼1953)가 사망한 병원 이름에서 따온 ‘세인트 빈센트’를 분신으로 내세워 2007년 솔로 데뷔했다. 독특한 악곡, 가창, 기타 연주력으로 주목받았다. 데이비드 번(토킹 헤즈)과 합작 앨범(‘러브 디스 자이언트’·2012년)도 냈다. 빈센트는 재즈 팝 듀오 ‘턱 앤드 패티’의 기타리스트 턱 앤드리스의 조카다.

독창적인 헤어스타일과 패션, 무대 매너로 ‘인디 레이디 가가’ ‘기타 든 레이디 가가’로도 불리는 빈센트와 11일 전화로 만났다. 빈센트는 “지미 헨드릭스와 레이디 가가 중 더 많은 영감을 주는 인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헨드릭스”라고 했다.

“전기기타는 무수히 많은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죠. 천둥이나 비명같이 공격적인 사운드부터 차분하고 부드러운 소리까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겐 가장 매력적이에요.”

빈센트는 “전자음악과 가상악기가 발달해도 미래의 음악에서 기타의 위상이 위축되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양손 태핑(픽으로 줄을 퉁기는 대신 지판을 손으로 직접 두드려 소리 내는 연주법), 독특한 음향장치의 사용으로 기계적이거나 혼돈스러운 기타 소리를 뽑아내는 한편 손동작이나 종종걸음으로 구성된 안무를 병행한다. 그는 “춤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언어여서 쉽지 않지만 관객을 몰입시킴으로써 음악이 음악 이상의 경험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너바나 헌정 무대에 오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너바나의 ‘네버마인드’(1991년) 앨범은 제 인생을 통째로 바꿨죠. 코베인은 세계 카운터컬처를 대표했고, 저도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영광이었어요. 코베인의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해요.” 한국의 음악이나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그는 “(이번 방한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많은 곳을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 빈센트는 데이비드 번의 새로운 음악 프로젝트에 또 한 번 참여할 예정이다. 새 솔로 앨범 작업과 영화 출연도 앞뒀다. “삼촌과 이모(턱 앤드 패티)는 내 공연을 자주 보러 와요.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에서도, 삼촌에게서도 늘 같은 조언을 얻죠. ‘너만의 목소리를 찾으라’.”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