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조성실 씨가 ‘출산, 삼대이야기’ 전시관 앞에서 임신한 배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두 팔로 끌어안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산부인과 분만대기실에서 진통과 사투 중인 손녀를 보려고 여든 넘은 할머니는 전북 김제에서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던지 신발도 짝짝이인 채로. 한 차례 진통이 지나가고 손녀가 숨을 돌리자 할머니는 당신의 첫 출산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이고. 첫 애기 낳기보다 힘든 건 없어. 아래가 다 없어져. 어떻게 죽을라고 하고 낳았는가 몰라.”
할머니 어머니 딸 3대의 출산을 다룬 ‘출산, 삼대이야기’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9월 22일까지 열린다. 문화인류학 박사인 조성실 씨(35)는 할머니, 어머니, 본인, 여동생의 출산과정을 담은 생생한 구술을 비롯해 출산 및 정부 정책 관련 자료 80여 점을 전시했다.
전시는 출산 전날, 당일, 이후 등 3부로 구성돼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준비물은 미역, 배냇저고리, 기저귀다. “예나 지금이나 배냇저고리 준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지. 기저귀는 헌옷으로 만들기도 했고.”(할머니) “산모용 미역은 자르거나 접으면 안돼. 그대로 말린 걸 사와야지. 안 그러면 애한테 안 좋다고 옛날 어른들이 얘기하곤 했어.”(어머니)
요즘 예비 엄마들은 더 바빠졌다. 미국식 베이비샤워 문화가 확산돼 친구들과 아기용품을 서로 선물한다. 기저귀 여러 개를 케이크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기저귀 케이크’가 인기다. “할머니, 어머니는 준비물이 단출했지만 이젠 손·발싸개, 모자, 물티슈, 체온계 등등을 챙기다 보면 여행 캐리어가 필요하다. 임산부 요가, 만삭 사진 촬영도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조 씨)
삼대가 흘러도 자식부터 생각하는 모정은 변치 않았다.
“처음에 널 딱 낳았는데 공주님이네요 그래…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드냐면 얘도 나 같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어쩔까. 그 걱정부터 딱 들더라고.”(어머니)
“(탯줄 자르는 걸) ‘쌈 개린다’고 혀 옛날 말로. 요즘 병원서 짤룹게(짧게) 끊드만. 그 전에는 길게 끊어야 명도 길고 애기가 괜찮다고 길게 끊었어.”(할머니)
삼대의 출산 경험은 1940년대 이후 출산 정책,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돌아간다. 첫 출산 나이는 갈수록 고령화(21세→26세→32세)되고 자녀 수(4남 2녀→3녀→1녀)는 줄었다. 할머니는 큰아들 출산 때 시어머니도 임신 중이라 나중에 시어머니 산후조리로 고생한 경험도 들려줬다.
조 씨는 지난해 시작된 민속박물관 객원 큐레이터 제도 첫 공모에서 당선됐다. 뽑힌 객원 큐레이터는 민속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자신이 기획한 전시를 선보일 수 있다. 조 씨는 “출산은 중요한 주제인데도 인류학이나 민속학에서 관심이 덜했기에 전시를 기획했다. 연로한 시골 할머니가 전시장에서 공감하고 감동 받고 돌아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전시장 벽면에 이렇게 썼다. “인류 존속은 이렇듯 엄마들이 느낀 고통의 순간들이 연속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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