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바틀렛의 건축 시나리오/서경욱 외 24인 지음/512쪽·2만8000원·미메시스
건물 이야기가 아니면 건축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일본식 한자어인 ‘건축(建築)’부터가 뿌리 깊은 오해의 원천이다. ‘세우고 쌓는 일’은 눈에 보이는 일부 과정만을 지칭한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저서 ‘건축을 묻다’(2009년)에서 기원전 로마 비트루비우스를 위시해 동원 가능한 모든 텍스트를 되짚어 한 가지 질문의 답을 쫓았다. ‘건축은 무엇인가?’ 그가 정리한 답안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재조직하는 작업”이다. 밥그릇이라는 사물에서 쓰임새를 가진 유일한 부분은 밥을 담는 ‘빈 부분’이다. 그 사실을 되새기고 책장을 넘길 때 이 책은 오해 없이 유용하다. 바틀렛은 영국 런던대(UCL) 건축대학원. 책의 25개 장은 최근 10년간 바틀렛에서 공부한 한국인 25명이 내놓은 작업이다. 북아프리카 나방이 뽑아낸 그물 조직에 대한 성찰, 2100년 이후의 디스토피아 런던을 위한 노아의 방주 계획, ‘발’의 문화인류학적 성찰…. ‘이게 무슨 건축 이야기냐’고 할 주제가 이어진다. 조밀하지 않은 논리로 멋부린 텍스트에 그럴듯한 이미지로 땜질한 장도 보이지만, 공간에 대한 고민이 어떤 스펙트럼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이화여대 ECC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추천사 첫머리가 ‘이 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다. “건축은 스토리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며, 건축이 사라지면 이야기만 남는다. 이야기는 건축의 시작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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