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은행가의 딸은 왜 포주가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9일 03시 00분


◇플로팅 시티/수디르 벤카데시 지음/문희경 옮김/368쪽·1만6000원·어크로스

미국 뉴욕의 지하세계에선 떠돌아다녀야 한다. 한곳에 뿌리박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사업을 찾아 떠돌아다니다 필요에 의해 인연을 맺고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바로 떠나는 식이다. 마약과 섹스를 중심으로 한 뉴욕의 지하경제 종사자들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뉴욕의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동아일보 DB
미국 뉴욕의 지하세계에선 떠돌아다녀야 한다. 한곳에 뿌리박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사업을 찾아 떠돌아다니다 필요에 의해 인연을 맺고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바로 떠나는 식이다. 마약과 섹스를 중심으로 한 뉴욕의 지하경제 종사자들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뉴욕의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동아일보 DB
#마약상 샤인

나? 뉴욕에서 크랙 코카인 등을 파는 마약상. 키 190cm가 넘고 흑인이야. 그렇다고 총 들고 설치는 부류는 아냐. 어디까지나 원하는 사람에게만 점잖게 파는 ‘사업가’지. 이것도 쉬운 장사는 아냐. 일을 거들어주는 사람 대여섯 명에게 매달 1500달러씩 줘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1만5000달러 이상 벌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어. 그러려면 50∼75명의 고정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고.

시카고에 있는 사촌한테 컬럼비아대 교수를 소개받았어. 사회학 전공인데 뉴욕의 지하세계를 알고 싶다나. 찜찜하긴 하지만 받아들였어. 왜? 사업에 도움이 될까 하고. 교수니까 상류층 사람들을 많이 알 거 아냐. 상류층에도 마약 하는 사람들 꼭 있거든. 그들을 고정 고객으로 만든다면 보다 안전한 거래처가 되는 거지. 지하세계는 공짜가 없어. 내가 그 교수한테 ‘이 세계에선 누구나 이용하고 이용당한다’고 충고했어. 교수도 예외는 아니지.

줄리아니 시장이 빅애플(뉴욕 시의 별칭)의 슬럼가를 정비하면서 상황이 많이 변했어. 흑인 이민자 같은 빈민은 외곽으로 밀렸고 거리에서 몸 팔던 아가씨도 더 지하로 숨어들었지. 슬럼 대신 들어선 고급 주택가로 돈 많은 부자들이 밀고 들어왔어. 그래서 내 사업도 부유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난 교수와 함께 소호의 미술관이나 미드타운의 고급 바에 자주 가. 웨이터나 바텐더에게도 좀 찔러줬지. 고객 물색해 달라고. 교수 통해서 하버드대 나왔다는 젊은 여성을 만났는데, 와우! 날씬하고 쌀쌀맞으면서도 우아한 분위기, 전형적인 부유층 딸내미야. 교수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내 고객으로 만들었어.

#하버드대 출신 포주 아날리스

샤인이라고 했나요? 그에게 약을 좀 샀죠. 나? ‘브로커’예요. 중개 대상이 ‘성(性)’이고 부유층을 상대한다는 게 좀 다를 뿐. 원래 전혀 꿈꾸지 않았던 일이죠. 허영심 많은 여자들이 돈 많은 남자들을 잘 다루지 못하기에 조언을 해주다 보니 이 길로 빠졌어요.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던데요. 돈을 버니까 은행가인 아버지에게도 할 말 하게 되더라고. 내 밑에서 일하는 여자들 중엔 나처럼 부유한 집안에 예일대 같은 명문대 나온 친구도 있어요. 걔들은 한 달에 1만 달러 정도를 벌어요. 나도 좀 벌죠. 차곡차곡 모아 어느 선 이상이 되면 손을 털려고 해요. 심심풀이니까 오래할 생각은 없어요. 번 돈을 세탁도 할 겸 미술 갤러리를 해볼까 하는데….

#지은이 벤카데시

나? 인도계 미국인인 사회학자로 컬럼비아대에 있습니다. ‘괴짜 사회학’이란 책으로 좀 알려졌지요. 시카고 빈민가에서 10년간 갱단과 생활하며 연구한 내용을 쓴 책이에요. 시카고는 구역마다 사는 계층과 룰이 달라 확연히 구분되는 도시였지요. 컬럼비아대로 오면서 샤인을 소개받아 뉴욕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뉴욕은 완전히 달라요. 뉴욕의 지하세계는 필요에 따라 인맥을 만들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빨리 헤어지는 식이야. 지하세계에 산다고 게으르거나 부도덕하지도 않아요. 중산층이나 상류층 못지않게 근면성실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더구나 뉴욕의 속도와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영역을 계속 개척해야 하죠. 샤인처럼 말이에요.

지하세계의 마약 밀매상, 불법이민자, 성매매 브로커와 여성 등 수백 명을 일일이 만나고 10년간 뉴욕을 탐구하며 얻은 결론은 샤인이 날 처음 만났을 때 뉴욕을 설명하며 해준 말과 똑같습니다. ‘떠돈다(floating)’. 한곳에 뿌리박지 않고 기존 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순간순간 변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의 르포와 비슷하다고요? 아니에요. 독자들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뉴욕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대구 주택가서 신종 테마형 성매매업소 적발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플로팅 시티#뉴욕#마약#성매매#수디르 벤카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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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추천 많은 댓글

  • 2014-07-20 20:40:32

    무조건 성매매 나쁜거니 없애자! 하고 사창가 밀어버리니 성매매가 없어지나? 오피스텔로 스며들고 해외원정녀는 넘처흐르고 온갖 부작용만 일어난다. 그 와중에 윤락녀의 인권은 땅에 떨어지고 등처먹는 깡패만 배부르게 된다. 미국의 금주법과 한국의 풍속업 탄압은 매우 유사하다.

  • 2014-07-20 20:37:37

    지하경제를 활성화 하자면서 넋놓고 있는 정부에 권할 책이구만. 풍속업과 뒷세계는 아무리 안볼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도덕과 도의만 따진다고 냉엄한 현실이 변하진 않는다. 현실을 냉정히 파악해서 음지의 세계를 좀 더 관리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 2014-07-21 02:51:42

    국가의체면 어쩌구하면서 성매매를 단속하지만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라질 확률은 전혀없다.허면 차라리 공창을 허용해 국가가 위생관리하고 세금도 걷우고 성범죄도 줄어들고 관련 여성들의 인권도 보호되지 않겠나.유럽선진국들 같이..법은 현실성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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